[나의 음악이야기]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
[나의 음악이야기]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
  •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 승인 2019.07.0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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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다가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아마 보는 중간에 나와 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숨겨둔, 아프고 두려워 없는 듯이 살고 싶은 상처 같은 존재 영혜.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양새를 과감하게 드러낸 내용 때문에 은밀하게 덮어둔 내 아픔이 들켜버린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평범함을 벗어난 일상에 대한 두려움, 무언가 나쁜 것이 나를 덮쳐버릴 것 같이 내 속에 스멀거리며 기어 나오는 기분 나쁜 느낌.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 보았던 영화 “마농의 샘”이 생각났다. 예쁜 딸아이와 함께 시골에 귀농을 한 남자. 이들의 생존을 방해하려는 악의에 찬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달도 없는 캄캄한 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이 가득하던 화면을 마주했던 순간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지금도 어쩌다가 그 장면이(영화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떠오르기라도 하면, 슬프고 두려운 밤하늘을 배경 삼아 달려들던 무서운 느낌과 함께 처연하고도 아름답게 흐르던 음악이 내 마음속에 흐른다.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Verdi: La  Forza del destino - Overture). 불안하고 어두운 음의 빛깔과 맞닿아 아주 서글프고 우울하게 들려오던 음악의 섬뜩했던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래도록 이 곡을 찾아 들었던 건 아마도 어두운 밤하늘에서 자잘하게 반짝거리는 별빛을 닮은 오보에의 음색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페라는 모든 대사를 노래로 하는 연극이다. 오페라에서 막이 오르기 전 이야기의 줄거리를 담아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기악곡을 서곡이라고 한다. ‘운명의 힘’은 칼라트라바 후작의 딸인 레오노라와 잉카의 마지막 귀공자인 알바로가 서로 사랑하지만 반대하는 레오노라의 아버지를 피해 함께 도망하려다가 사고로 연인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불운한 운명으로 시작된다. 알바로는 사랑하는 레오노라와 맺어지지 못하게 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연인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결국 알바로 자신도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맞이한다는 나쁜 운명의 힘을 줄거리로 하는 만큼 서곡의 처음부터 불길하다. 금관악기의 음색은 무언지 모를 두려움이 깃든 장엄함을 드러내고 그 관현악의 숲을 지나면 현악기의 선율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이 물결처럼 출렁인다. 이어서 남자 주인공 돈 알바로의 구슬픈 테마가 오보에의 음색으로 연주된다. 

내가 좋아하는 서늘한 푸른 빛깔의 아름다운 선율이다. 배경은 여전히 우울하고 불안하다. 여주인공 레오노라의 간절한 기원 같은 가락을 현악기가 트레몰로로 물결처럼 연주한다. 이 가락도 무척 아름답다. 천천히 느릿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빠르게 변화되어 연주되다가 금관악기의 힘찬 합주로 여태까지 따라오던 불안감을 밀어내고 관현악으로 씩씩하게 맺음 한다. 가끔 마음이 불안할 때 ‘운명의 힘’ 서곡을 들으며, 결국 모든 불안과 공포는 우리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사는 일이 두렵고 어려운 일상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한 번쯤 ‘운명의 힘’ 서곡을 틀어 놓고 그 앞에 서 보면 어떨까. 줄거리는 음울하고 비극적이지만 그래도 오보에 선율처럼, 혹은 현악기의 가늘지만 끊어지지 않는 기원 같은 음의 빛깔이 함께 섞여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해 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케스트라처럼 여럿이 함께, 서로 다른 소리로 어울려 힘차게 불러보는 노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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