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아이콘 ‘앤디 워홀’
현대미술의 아이콘 ‘앤디 워홀’
  • 유은숙 기자
  • 승인 2019.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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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 아트디렉터, ‘앤디 워홀로 이해하는 현대미술’
“예술과 대량생산 제품의 경계 허문 팝아트의 선구자”

20세기 미국 대중문화를 선도했던 앤디 워홀(Andy Warhol)에 대한 궁금증을 21가지 키워드로 돌아보는 현대미술 입문 수업이 지난달 30일 카페 ‘느린시간’에서 열렸다. 현대미술은 보는 사람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다르며 간혹 난해하다는 이유로 감상을 꺼리기도 한다. 강연자 이승준 아트디렉터는 2016년부터 현대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기획과 강연을 진행해 오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나도록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앤디 워홀의 삶을 스무고개 넘듯이 따라가 보았다.

이승준 아트디렉터
이승준 아트디렉터

그림에 재능이 넘쳤던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은 슬로바키아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 부부의 셋째 아들로 미국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매우 현대적 인물로 생각되는 워홀은 사실 ‘체 게바라’와 같은 해, 1928년(8월 6일)에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의 부모님은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배움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 대학 공과대학에서 상업미술을 공부했고 뉴욕 ‘글래머’ 잡지사의 신발드로잉을 시작으로 디자이너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이때 앤드류 워홀라(Andrew Warhola)라는 그의 본명이 편집 디자이너의 실수로 ‘앤드류 워홀’로 바뀌고 이를 계기로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그는 디자인에서 순수 미술에 대한 열정이 싹텄고 “누구도 그리지 않는 그림,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리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팝아트(대중적 소재로 만들어진 예술)가 영국에서 시작됐지만 이를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것은 미국이다. 워홀은 손으로 그린 만화 팝아트를 시작으로 1962년 풍요 속 빈곤을 상징하는 ‘캠벨 통조림’ 그림과 평등을 나타내는 ‘코카콜라’ 병 등을 그린다. “미국이 위대한 이유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본질적으로 똑같은 물건을 구매하는 전통을 세운 것이다. 누구나 같은 콜라를 마시고 돈이 많다고 길모퉁이 부랑자보다 좋은 콜라를 살 수는 없다”고 말하며 소재의 한계를 무너트린다.

‘캠벨 통조림’이 나온 1962년 마를린 먼로의 실크 스크린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2년간 조수들과 2천여 작품을 찍어낸다. 예술성 확보를 위해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작품으로 담아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라는 밴드를 제작하고 1969년에는 《인터뷰》라는 잡지도 창간하며 미국 곳곳에 그의 영향력을 확산해간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는 나무상자위에 실크스크린기법으로 대량생산 됐으며 제품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는 나무상자위에 실크스크린기법으로 대량생산 됐으며 제품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특히 1964년 워홀이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선보인 ‘브릴로 상자’ 작품은 팝아트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상품박스와 구별이 안 되는 예술작품 ‘브릴로 상자’는 포스트모더니즘 성장의 변곡점, 시발점이 된다. “뭐든지 작품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라는 가치 실현으로 예술과 대량생산 제품의 경계에 존재하는 모순점을 드러낸다. 이후 워홀은 개인전 ‘앤디 워홀: 1970년대의 초상’과 ‘20세기 유대인의 초상 10점’을 작업했다. 1987년 2월, 그 스스로는 가볍게 생각했던 수술이 합병증을 일으켜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58세였다. 작품 ‘최후의 만찬’이 최후의 작품이 됐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는 팝아트의 선구자였고 이미 전설이었다. 지금까지 현대미술뿐 아니라 영화, 광고, 시각예술 전반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끈 이로 기억되고 있다. 

작품성 외에 동성애와 약물중독, 검은 안경과 은색 가발 등 많은 가십거리로도 유명했던 그는 사실 경건한 가톨릭 신자로 노숙자를 위한 자원봉사를 몰래 하기도 했다. 가난한 자와 부자, 모두와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유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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