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춘천을 읽다]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시인 춘천을 읽다]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 금시아(시인)
  • 승인 201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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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시인의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를 따라가보자. 시인은 “몽환적인 것보다 명료한 것에 가까울 때의 느낌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는 날은 다소 몽환적이다. 그의 춘천 가기는 현실 세계를 벗어나 현실에서는 이미 사라진 진리와 형이상학을 찾아 그리스와 신라를 거쳐 다녀온 신비로운 여행이다. 

춘천의 일상은 시인에게 자연발생적인 소박한 유물론적 도시다. 그곳은 자연물을 포함하여 사회적 존재물이 시인의 의식 밖에 독립하여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춘천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가운데에 존재하고 그들과 여러 관계를 맺고서 생활하고 있다고 의식한다. 그는 초자연적인 종교를 가진 관념론자이지만 춘천에서 시인은 유물론이 옳았다고 한다. 생활세계에서 온 그는 춘천의 일상에서 ‘죽어가는 시절의 고독과 사후의 무심을 떠올리며 길거리의 개들과 눈을 맞’춘다. 시인에게 ‘그것은 할인마트에 내리는 석양처럼 신비로운 일’이고 ‘낮잠에서 깨어난 오후처럼 비변증법적인 일’이다. 

이장욱 시인은 문학이란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또 시인 이은규는 《현대시 월평》에서 이 시에 대해 “‘생활세계’에서 ‘춘천’으로 이동한 그의 시적 주체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아토포스(atopos)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인이 시에서 보여주는 춘천은 오직 어떤 장소에 고정되지 않은, 정체를 알 수 없어 어떻게도 특정 지을 수 없는 비변증법적인 비생활세계이다.

아마도 그는 어느 날 ‘생활세계’에서 비생활적인 풍경 속으로 문득 스며든다. 그곳에 잠시 제 영혼을 내려놓고 비일상적인 영혼들을 일깨워 돌아간다. 그리고 신비롭고 비변증법적인 비생활세계가 ‘열차가 북한강의 긴 교량을 건널 때 옆자리의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면’ 순간 ‘정확한’ 생활세계 속에 있게 된다. 

금시아(시인)
금시아(시인)

이장욱 시인의 시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에서는 춘천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얼마나 수수께끼 같은 도시인지를 잘 보여준다. 시인과 시의 세계는 일상에서 얼마나 가까이에 있을까? 춘천은 보이는 듯하면서도 마냥 신비롭고 그저 잔잔하다. 좀체 알 수 없는 비생활세계적인 호수의 물결이다. 

“영향이란 특정한 고유명사가 되지 않은 채 의식 너머에서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주 천천히 지속적으로”라는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춘천은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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