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이정배 (문화비평가)

스토리 중심 영화의 묘미는 서프라이즈와 서스펙트에 있다. 갑작스럽게 놀람을 주는 서프라이즈는 공포나 잔혹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영화기법이고, 서서히 심장을 조여오는 서스펙트는 미스터리나 심리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영화기법이다. 이들은 다음으로 이어질 반전(反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놀람과 긴장을 잘 배치하면 관객의 심리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인기를 누렸지만, 한국에서는 별로 흥행하지 못한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2003) 시리즈가 있다. 물론 이 영화는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시리즈가 원조이다. 미국 가정의 필수품 중 하나인 전기톱을 들고 설쳐대는 살인자의 모습은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우리의 정서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자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관객들이 놀라기도 하지만 전기톱 엔진 소리에 더욱 공포감이 생긴다. 물론 놀라는 것은 관객만이 아니다. 영화 속 출연자들의 날카로운 비명은 시너지효과를 준다. 출연자나 관객 모두 살인자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이것이 서프라이즈다. 살인자 등장에 대한 어떤 정보도 사전에 주어지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유주얼 서스펙트》(1995)는 다른 문법을 사용한다. 많은 이들이 예측 가능한 반전에 뻔한 결말이 있는 이 영화가 왜 명작에 들어있느냐고 의아해한다. 그런 말을 하는 대다수 관객은 서프라이즈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친절하게 제목에 ‘서스펙트’를 달아두었다. 놀람이 아니라 서서히 심장을 조여가는 과정을 통해 재미를 주겠다고 선언한 영화다. 

서프라이즈와 서스펜스의 차이는 ‘갑자기’와 ‘서서히’에 있는 게 아니라 정보의 차이에 있다. 서프라이즈가 관객과 출연자 모두 사전에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히 발생한 일이라면, 서스펜스는 출연자나 관객 중 어느 한 편만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서스펙트는 복선이나 암시 등의 방식으로 정보를 조금씩 노출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1963)를 보면, 전반부에서 새들이 그득 앉아 있는 장면이 등장하고, 이후 한 마리가 자동차 유리창에 부딪히는 장면이 나온다.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장차 일어날 무서운 사건을 예견한다. 그래도 두려움이 몰려드는 건 마찬가지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새들이 집단으로 인간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쥬라기 공원》(1993) 시리즈나 《새벽의 저주》(2004)로 비롯된 좀비물이나 《에이리언》(1979)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이들 시리즈물의 특징은 엄청난 서프라이즈에 의한 반전을 통해 충격을 주기보다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공포의 강도를 높여가는 서스펜스 기법을 따른다는 데 있다. 물론 사이사이 서프라이즈를 양념처럼 섞어 넣기도 한다. 

서스펜스가 잘 구축되어야 서프라이즈가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너무 자주 등장하는 서프라이즈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효과가 반감된다. 서스펜스나 서프라이즈 모두 결말에 가서 안도감과 평안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드시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여전히 즐긴다. 결말이 주는 위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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