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 읽기의 기능과 역할

김진규 (그믐달시낭송콘서트 대표)
김진규 (그믐달시낭송콘서트 대표)

문장을 읽으며 의미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려고 할 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띄어 읽기’다. 띄어 읽어야 할 곳에서 붙여 읽는다든지 또는 붙여 읽어야 할 곳에서 띄어 읽는 오류를 범한다면, 글의 의도가 왜곡된다. 어디에서 띄어 읽는지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팔팔결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에 따른 해악은, 글을 읽는 본인 자신뿐 아니라 청자에게까지 두루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문법이 아니라, 반드시 어법에 따라 띄어 읽어야 할 곳에선 띄어 읽고, 붙여 읽어야 할 곳에선 붙여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문장 왜곡을 방지하고, 나아가 문장이 의도하는 의미를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며 전달할 수 있다. 글도 말도 전달력이 우선이다. 띄어 읽기가 하는 역할과 기능은 대략 호흡, 의미 확정, 강조 등 세 가지다.

모든 숨탄것들은 생리적으로 숨을 쉬지 않을 수 없다. 문말(文末)에선 거의 예외 없이 휴지(休止)와 호흡이 동시에 발생한다. 문중(文中)에서도 들숨이 필요할 때가 되면, 어디든 호흡을 위한 휴지가 발생한다. 인간의 언어 능력은, 거의 본능처럼 작용하므로 이럴 때에도 ‘말의 법칙과 연동된 호흡’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문장을 읽을 땐 상황이 다르다. 말할 때와는 상황이 달라도 한참 달라진다. 이때는, 자연 상태에서의 발화가 아니기 때문에 언어 본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따라서 띄어 읽기의 법칙을 의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읽기를 위해선 문자언어를 음성언어로 변환해야 한다.

띄어 읽기는 의미를 확정하는 기능을 한다. 이 말은, 띄어 읽기를 잘못하면 문장 이해가 어려워지고 또 왜곡과 오해를 낳는다는 의미다. “나오라그랬어?”라는 문자언어를 음성언어로 “나오라그랬어?”하고 붙여 읽으면 ‘밖으로’ 나오라고 했는지 묻는 말이 되고, “나#오라그랬어”라고 읽으면 ‘나’를 오라고 했는지 묻는 말이 된다. “호랑이가죽을먹다.”는 “호랑이가#죽을먹다”, “호랑이#가죽을먹다”로 각기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띄어 읽기는 의미 확정과 함께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띄어 읽기의 위치만 바꿔도 얼마든지 다양한 정신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때론 종결어미에서도 하나의 감정라인으로 이어지는 경우엔, 붙여 읽어야 한다. 문장단위(=의미다발)가 아닌, 문단단위(=감정다발)에서 띄어 읽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네, 바로 접니다. 슈이타와 센테 둘 다예요.”라는 문장에선, 마침표가 있다하더라도 무시하고 붙여 읽어야 한다. 그래야 ‘악독한 슈이타와 선한 센테’ 둘 다 자신이라는 화자의 심리상태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읽기를 위해선 띄어 읽기의 예민한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

띄어 읽기는 강조의 기능이 있다. 대체로 강조하려는 말 앞에서 띄어 읽는다.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낭송한 김인육의 <사랑의 물리학> 마지막 연이다. 그 끝 행 “첫사랑이었다”를 강조하기 위해선, 셋째 행 끝에서 상당한 정도의 휴지를 주어야 한다.

또한 화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청자로 하여금 어디에 주의를 집중하도록 하고 싶은지에 따라 띄어 읽기의 위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누나가넘어졌어요”에서 휴지를 두지 않으면, 누나가 강조되지만, “누나가#넘어졌어요.”라고 띄어 읽으면 ‘넘어졌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띄어 읽으면 뒷말이 강조되고, 붙여 읽으면 앞말이 강조된다. 시험 볼 때 흔히 “침착하게 풀어라”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문장에선 붙여 읽어야 한다. 문제야 ‘푸는’ 게 당연하니 강조돼야 할 곳은 ‘침착하게’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의 발화에서는 제대로 말할 것이나, 문장을 읽을 땐 언어본능이 잘 발휘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띄어 읽기에 한층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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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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