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BC 27-AD 14)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161-180)까지를 지중해 세계가 비교적 안정을 누렸던, 약 200년간 지속된 로마의 평화로 이민족의 침입도 없었고 국내의 치안도 확립되었던 로마의 황금시대로 말한다. 당시 로마 가정에는 보통 5~12명의 노예가 있었다. 일부 귀족은 로마 시내에 500명, 외곽 농장에 2천~3천 명의 노예를 거느리기도 했다. 로마 제국의 번영을 지탱한 힘줄로서 대부분 전쟁 포로들이었다. 

로마법은 주인이 노예들을 죽이든 살리든 관여하지 않았다. 노예용 특수 목걸이엔 ‘나는 곡물 공급 기관 관료의 노예다. 도망쳐 나왔다. 도망친 노예이기 때문에, 체포를 바란다. 반납은 플로라 성당 근처의 이발소로’ 라고 씌어 있을 정도로 비인간적이었다. 

로마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노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기 때문에 노예는 사회적 균형을 위해 필수 생산요소로 간주됐다. 로마 시민들의 자유를 지탱한 건 노예들의 노동이었다. 노예의 생활환경 배려와 인도적인 규칙의 도입 이 노예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예의 탈주라는 고민을 덜기 위한 해결책의 일환이었을 정도다.

경영과 관리에 능수능란한 주인은 효율적인 당근책을 활용했다. 유능한 노예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수시로 고기와 소금 그리고 돈(은화)으로 포상을 했으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업무 교체를 해줘 노예로 하여금 지루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했다. 월등한 재능을 보이는 노예에게는 노예장으로 진급시켜 완장의 무게를 느끼게 해 줬으며 때때로 주인과 함께(정확히는 주인 시중을 들면서였지만) 여행할 수 있는 은총도 베풀었다. 어떤가? 직장인으로서 고대 로마 사회의 노예와 정서적 유대감이 느껴지는가? 우리 시대의 집단 착각은 ‘당신은 노예’다. 하지만 진실은 ‘나도 노예’다. 

2천 년을 건너뛴 자본주의시대 노예시장에도 가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연출된다.

미국 메릴랜드 주의 최대 항구도시인 볼티모어에 본사를 둔 세인트 존 부동산 회사(St. John Properties)는 지난 7일 열린 송년 파티에서 198명의 직원에게 총 1천만 달러(120억 원)의 깜짝 보너스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제 막 입사해 아직 업무에 투입되지 않은 신입직원에게는 100달러(12만 원), 39년 근속한 정비사에게는 27만 달러(약 3억2천만 원)를 지급했는데 이 정비사는 38년 근속한 회장보다 더 많은 보너스를 받았다고 한다. 

기준이 된 연공주의 원칙에 따라 회장보다 오랜 기간 헌신한 노동자에게 더 많은 보너스를 주었다는 데에 “만세!” 전 세계를 상대로 “나는 선장이지만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직원들이다. 팀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경영 메시지를 담은 인상적인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면서 겨우 120억 원으로 해결한 래리 메이크랜츠(Larry Maykrantz) 회장의 스마트함에 다시 한번 “만세!” 전 세계 노동자들은 저 회장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겠지만 대한민국의 경영자들은 ‘저 친구 미쳤군!’, 할 것에는 “오호통재라!”

고대 로마 사회에서도 노예의 주인은 충성과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노예를 해방시켜주곤 했다. 메이크랜츠 회장의 선한 의지를 기리는 뜻에서 나는 기꺼이 그를 노예 해방자라 부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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