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 Romance for Violin & Orchestra No. 2 in F major Op.50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사진 한 장을 앞에 둔다. 넘실거리는 새파란 바다빛깔위의 하늘도 그대로 파랑이다. 영원히 만나지도 못하면서 서로 바라만 보다 닮았나. 파랑이 뚝뚝 듣는다. 무척 슬픈데 슬픔을 만져 줄 무엇인가를 찾다가 파랑색이 가득한 사진 한 장을 들고 한참 내려다본다. 

어렸을 적엔 엄마가 우주였다. 슬퍼서, 무서워서 죽겠을 때도 엄마 품에만 들면 다 괜찮았다. 어느 날 엄마에게 찾아든 바람(風). 바람과 맞닥뜨린 엄마의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온 우주였던 엄마가 두려움과 충격으로 미세먼지처럼 작아져 버린 날, 나는 우주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무섭고 슬픈데 숨어들 엄마 품 대신 내가 엄마를 안아드릴 품이 돼야한다는 사실에 한기가 들었다. 탕 속의 따뜻한 물에 담그면 엄마 품 같을까 하여 김이 오르는 탕 안에 들어서려는데 물빛이 예쁘다. 

파랑색. 타일이 파랑색이라 참 다행이야 생각하며 몸을 밀어 넣는다. 코앞에 파랑색 물이 출렁거린다. 찰랑거리는 슬픔의 파랑색. 음악이 있었으면 싶어지는 순간. 슬플 때는 슬픈 선율이 마음을 치유해 준다고 하던데 지금은 싫다. 날카롭지만 따뜻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부드럽고 싱싱한 선율이 필요하다. 바이올린 소리가 상큼한 연두빛깔로 돌돌말린 호박넝쿨의 맨 끄트머리, 그 귀엽고 탄력 있는 꼬부랑을 닮았던 베토벤의 로망스 F장조. 그 음악이면 될 것 같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바이올린의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어울림이 차분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관현악 소품. F-Major(바장조)로 아주 목가적인 서정성을 지닌 가락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이미 청력에 이상이 있었고, 연애에도 실패해 자살을 생각하기도 할 만큼 불안정했다. 요양하러 간 도시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에서 유서를 작성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평온하고 아름다운 가락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하긴 슬픔과 기쁨의 빛깔은 사실 무척 닮아있기도 하다. 내게 기쁨의 빛깔이기도 하고 동시에 슬픔의 빛깔이기도 한 파랑처럼. 

베토벤의 작품 활동 시기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뉘는데 이 곡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시절, 제1기에 작곡한 초기의 작품이다. 하이든에게서 작곡을 배우기도 했고, 모차르트를 만나기도 했으며, 베토벤을 그렇게도 추종하던 젊은 작곡가 슈베르트를 만나기도 했던 고전주의 작곡가 베토벤. 그는 두 곡의 로망스(Romance)를 남겼는데 이 곡은 두 번째 곡인 2번 F장조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세레나데 13번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직크(Eine kleine Nacht Musik)’의 로망스 악장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바이올린이 Cantabile(노래하듯이)로 주선율을 연주하고 나면 오케스트라가 받아서 연주하는 첫 번째 주제에서 이미 이 음악은 마음에 슬며시 감겨든다. 베토벤의 말기 작품처럼 깊고 심오함은 좀 덜 하지만 가볍고 부드러운 선율로 젊은 시절의 풋풋함이 배어있어 무척 아름답다. 어쩌면 그의 청력 이상, 그리고 연애의 실패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실, 그리고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던 베토벤의 저 마음 깊은 곳에 찰랑거리던 슬픔의 빛깔이 그토록 감미로운 선율로 만들어져 흘러 내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늘 코앞에 찰랑거리는 파랑색 물결 속에서 내 마음으로 흘러들 수 있는 감정의 연결선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베토벤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시간은 자로 잰 듯 흐르고, 이제 내게 우주였던 엄마의 시간도 흐르고…. 나도 이 시간을 잘 지나고 나면 기쁨과 슬픔의 그 어드메쯤에서 아름다운 노래처럼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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