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호 편집인
이충호 편집인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3억 원의 ‘고액 자녀 축의금’ 논란에 대해 “제가 40년 넘게 낸 것의 품앗이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잔치국수 하루벌이 치고는 괜찮았다는 건지 그의 얼굴엔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하다. 구김 하나 없는 남색 양복의 가슴 깃엔 나눔 동참의 징표인 빨간 사랑의열매가 보색 효과로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사랑의열매가 언제부터 고관대작들의 장신구가 되었을까, 궁금하다. 

중국 인민일보가 전하는 노동을 예술로 승화시킨 남자와 사진에 혼을 불어넣은 사진가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눈물이 맺힌다. 10년 전 쉬캉핑이 찍었다는 사진 속에는 중국 충칭시 하오톈먼 도매시장에서 일하는 방방(짐꾼)이 웃통을 벗어재낀 등에 자신의 키보다 큰 짐을 왼손으로 들쳐 매고, 오른손으론 세 살 아들의 손목을 부여잡고 아슬아슬하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고통을 잊기 위한 진통제인지 그의 입가엔 담배가 물려 있고 두 눈동자는 바로 앞 발길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미니 군인 전투복이 깜찍하게 어울리는 아들은 방금 전까지 갖고 놀던 책인지 공책인지를 한 손에 든 채 아버지의 걸음 속도에 맞춰 바삐 내려오고 있다. 발을 헛디딜까 조심하면서도 아버지와 함께여서 행복한듯한 꼬마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짐꾼 란광후이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시장이 파하는 오후 6시까지 보통 100kg의 짐을 1층에서 10층까지 계단을 통해 나른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까지 걸리는 품에 그가 받는 삯은 10위안(약 1천700원)이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맨살에 얹어 그가 나르는 짐의 무게는 하루 평균 1톤가량이다. “그의 직업만큼 삶의 무게를 확실하게 느끼게 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다른 비유가 필요 없어 보인다”는 인민일보의 설명에 중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다. 

란광후이는 훔치거나 속이는 등 다른 부정한 방법으로는 한 푼도 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번다며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살던 판자촌이 개발에 밀려 철거되자 적지 않은 돈을 대출받아 40만 위안(약 6천800만 원) 짜리 집을 마련했다. 4만 개의 짐을 날라야 감당할 수 있는 액수다. 쉰 살이 된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이를 악물고 짐을 나른다. 그가 하루에 쓰는 용돈은 담배 두 갑과 국수 한 그릇 값인 21위안(약 3천500원)이다.

사진가 쉬캉핑은 지난 10년 동안 틈이 날 때마다 시장을 찾아 란광후이 부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판자촌 거주 시절 부엌 등불 아래 숙제를 하던 그의 아들은 중학생이 되었다. 학급 반장으로 공부도 곧잘 하고 아버지를 닮아 무거운 짐도 잘 나른다고 한다. 기특하게도 아버지의 직업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

생각이 겹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과 육체노동을 능가하는 재테크를 숭배하는 사회에서 나는 무엇일까. 고장난 자본주의 시대에 나는 어떤 생각을 붙들고 살아야 할까. 

그럴듯한 점심이라도 먹은 날에는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기보다는 ‘오늘 저녁은 먹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서 당당했을 란광후이를 올 한해 자주 떠올리고 싶다, 비록 헛되다 할지라도.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