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김대건 (강원대 행정심리학부 교수)

교수신문은 매년 12월에 그해를 대변하는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예를 들면 2017년도는 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 2018년도는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이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은 모처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대변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 사자성어였지만, 지난 10여 년간 선정된 사자성어는 진실을 숨기는 것을 질타하거나 잘못된 길을 고집하는 지도자의 모습, 또는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인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 많았다. 

2017년에는 파사현정 못지않게 관심을 끈 사자성어가 있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각자 스스로 살기를 도모한다는 뜻으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2019년도에 1위를 차지한 공명지조(共命之鳥)는 각자도생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 몸통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가 있었다. 새의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는데, 다른 머리는 질투심을 느껴 독이 든 열매를 먹었고, 이로 인해 결국 몸통을 같이 하는 새는 죽게 된다.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망각한 새의 어리석음을 일컫는 사자성어다.

공명(共命)은 비단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무와 뿌리, 진보와 보수, 자유와 평등,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는 ‘공명지조’와 같이 공동의 운명을 지닌 불가분의 관계이다. 특히 강자와 약자는 같은 운명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호한다는 상생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인간은 수렵과 채집의 경제사회로부터 오늘날까지 공동체 성원의 협력을 통한 상생의 메커니즘을 만들어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지구상에서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력과 상생을 거부한채 극도의 갈등 속에 있는 현 세태는 어리석은 ‘공명지조’와 같다. 서로 물고 뜯는 사회의 수준으로 전락했다.   ‘OECD Better Life Index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지지는 조사 대상 35개국 중 35위이고, 갈등지수는 1.043점으로 조사 대상국 중 5위였다. 삶의 질은 5.9점으로 35개국 중 26위를 차지하여, OECD 평균 6.5점에 한참 밑돌았다. UN SDSN이 발표한 2018 세계 행복지수 순위를 보면, 한국은 5.875점으로 조사대상국 156개국 중 57위를 차지했다. 이는 사회갈등은 매우 높은 반면, 사회적지지, 사회적 포용 및 삶의 만족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협력 의향을 실험한 게임이 있다. 동일한 게임 구조를 가진 두 개의 게임 집단으로 나눈 뒤, 한 집단에게는 ‘공동체 게임’이라 하고, 다른 한 집단에게는 ‘월가 게임’이라고 말한다. 유일한 차이는 게임의 명칭뿐이다. 하지만 각 집단 구성원들의 협력 의향은 아주 다르게 나타났다. ‘공동체 게임’을 한다고 들은 집단의 각 구성원은 70%가, ‘월가 게임’이라고 들은 집단의 각 구성원은 33%가 협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체’와 ‘월가’에 내포된 문화적 의미가 각 집단 구성원의 인식과 행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게임의 구조가 동일하다고 해도 각 집단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과 소통이 달라지고 협력의 가능성도 달라진다. 언어와 인식틀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 우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사회를 보호하지 않으면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공동체가 파괴되거나 해체될 수 있다. 사회를 보호하지 않고 공명지조의 상태를 지속할 수 없지 않은가!

경자년 한 해가 시작되었다. 또 소망해 보건대 올 한해 2020년이 다 지나고 연말에는 동(同)과 공(共)이 존재하는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라는 사자성어가 선택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