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열흘 넘게 아이들이 집안에서만 지낸다. 코로나19의 유행은 우리의 발목을 묶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물론 모든 학교의 개학일이 연기되고 외출을 삼가며 지내고 있다. 감염의 우려에도 부모가 모두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경우 어린이집에서는 긴급보육을 제공하여, 당직교사가 등원한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밖의 소란에도 아랑곳없이 일단 어린이집에 등원한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지난 일요일, 쉬는 날 없이 이어지던 출근을 멈추고 종일 3남매와 보냈다. 워낙 어린아이들과 생활해야 하는 나는, 교회 예배도 하루 쉬기로 했다. 먼지 쌓인 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집 청소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 저녁 먹을 음식까지 만들어 두고, 책을 읽고 시간의 호사를 누린다. 아이들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자매 둘이서 어디 외국 드라마에 삽입된 곡을 한동안 치더니, 바이올린 소리가 같이 들리기 시작한다. 제법 음색이 좋아 나가보니 둘째의 피아노에 첫째의 바이올린 합주가 시작된 것이다. 바이올린을 몇 년 만에 잡은 건지 기억도 안 난다며 한동안 둘이서 신나게 연주한다. 무료했던 나도 재미있어졌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울 때 연주하던 바하, 슈베르트, 베토벤 등 작곡가들의 소품들을 연주해 주면 맞춰 보겠다고 했다. 바하의 곡을 빼곤 다 틀렸지만 우린 한 동한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깔깔거리며 즐거웠다. 

작년 큰 아이가 청년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외국에 있었을 때 집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달래는데 피아노가 큰 몫을 했다고 이야기했었다. 처음 올 때부터 중고였던 우리 집 피아노는 아이들의 방학이나 휴일이면 기분 좋은 음악으로 거실을 채운다. 누나들에게 밀려 차지가 가지 못하니 막내는 소금을 불어보거나, 가끔은 집에서도 첼로를 켜 본다. 그러나 악기보다 즐기는 건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을 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마스크를 하고 기어이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상쾌해진 기분으로.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정규학교수업 외에는 학습지 한 장 하지 않았지만 방학에도 쉬지 않고 악기를 배우러 다녔다. 학교 앞 피아노 학원 원장님의 레슨 방법도 그랬고, 엄마인 내가 요구한 것도 ‘진도 나가는 것보다 악기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었다. 셋 다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피아노 배우기는 멈추었지만 음악을 즐기고 있다. 배움의 시간이 긴 현악기를 둘째는 주 1회 집에서, 셋째는 학교 관현악단에서 여전히 배우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그들의 여가시간에 현악기도 제몫을 할 것이다.

예술은 일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해 준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연습해야하는 것만 아니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우리는 나의 삶은 물론 자녀들도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마음으로 악기를 가르치거나 음악, 미술, 체육 등 예능수업을 받게 한다. 심지어 유아기부터.

퇴직 후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린이집 환경은 그야말로 특별활동프로그램의 소비장이 되어있었다. 영어, 미술, 음악, 체육, 오감놀이 등 특별활동프로그램이 어린이집 깊숙이 들어와 있고 부모님들은 그것이 정말 특별한 교육인 양 여기고 있음을 발견했다. 20분씩 체육, 음악, 미술 선생님이 제공하는 특별활동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도구들과, 아이들의 귀를 사로잡는 목소리, 요란한 음악, 잠시 아이들이 눈과 귀를 모으고 선생님의 공연을 관람한다. 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되어 이끄는 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영유아기는 탐험가의 기질이 많은 시기이다. 스스로 탐색하고, 도전하고, 자기 나름의 놀이를 하며 즐기고 배우는 것이다. 2019개정누리과정은 그 부분을 주목하고 유아주도의 놀이중심교육과정을 발표했다. 

3월, 이제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모든 유아교육기관에서 유아주도의 놀이중심교육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악기를 배우는 특별한 배움은 학교 갈 여덟 살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배움의 속도를 아이에게 맞추고, 매일 조금씩 꾸준히 연습하면 아이의 의지도 함께 기를 수 있다. 유아기는 특별활동보다 담임교사, 친구, 놀이를 통해 모든 배움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기임을 부모님들이 믿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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