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 현장 인터뷰] 혼자만 잘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에 할 일이 없다
[취재기자 현장 인터뷰] 혼자만 잘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에 할 일이 없다
  • 홍석천 기자
  • 승인 2020.03.25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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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 김선옥 전 이사장, 양종천 신임 이사장

Q 춘천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두레생협)이 1995년 소비자와 생산자 직거래 모임인 ‘방주공동체’로 시작하여 2001년 ‘춘천생활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후 2016년 ‘춘천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개칭하면서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그간의 역사를 짚어달라.

김선옥 전 이사장: 처음 생산자, 소비자 공동체가 만들어진 계기는 춘천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우루과이라운드 등 한국 농업 전반적인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또 산업화를 통해 저곡가 정책과 식량 증산 정책이 시행되면서 건강한 먹거리보다는 화학물질을 사용해 생산력을 증대시키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20년이 지나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지금도 여전히 화학비료나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훨씬 심각했다. 1990년대부터 위기를 느낀 농민들이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땅도 죽고 사람도 죽는 농업 더 이상 안 된다’는 사람들이 모여 농민운동을 전개했다. 도시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농촌으로 귀농하기도 했다. 뜻깊은 일이지만 초창기에는 유통체계가 너무 낙후해 금전적 어려움이 컸다. 또 인증체계도 당시에는 갖춰지지 않아 직거래를 통해 믿을 수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방식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다.

춘천두레소비자생활협동조합 김선옥 전 이사장(왼쪽), 양종천 신임 이사장(오른쪽)

Q 지난 총회에서 재정상황이 좋아졌다고 발표했다.

양종천 이사장: 최근 몇 년간 적자를 겪고 있었지만 2019년 결산에는 감가상각비를 포함해도 흑자가 났다. 사실 적자가 나는 해에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감가상각비는 계산하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선택사항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간 3분의 2는 적자, 3분의 1은 흑자였다. 지난해 임직원들이 열심히 활동했고 조합원의 참여가 뜨거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경영시스템이 크게 변화된 것은 없지만 경험을 통해 조금씩 적자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조합원들이 찾아내고 있다. 가령 농축산품 등 생물의 경우 유통기한 때문에 폐기처분하면 손해가 크다. 조합원들이 능동적으로 생물의 재고를 파악하고 먼저 소비한다. 카드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지역사랑상품권 등을 자발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조합원들의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Q 농촌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농가당 경지면적은 늘어나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김선옥: 농촌으로 사람들을 유입시키려는 노력이 있지만 과연 유입이 잘 될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것보다는 농사를 짓는 분들도 ‘잘 먹고’, ‘잘 사는’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회복하고 지키는 것이 당면한 과제이다. 아직도 농촌에서는 자녀를 도시로 내보려한다. 농촌생활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농촌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자녀들만큼은 도시로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농업인들의 자존감과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두레생협의 철학이다.

춘천두레생협 창립20주년 대의원총회(2020.2.19.)

2003년부터 여기서 일하기 시작했다. 마침 대중매체에서 ‘잘 먹고 잘사는 법’, 즉 웰빙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다. 이전에는 알음알음 농촌운동, 소비자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이용했지만 웰빙 열기를 타고 좋은 식재료를 찾는 사람들이 대거 들어왔다. 규모는 급성장했지만 본래의 철학이 완전히 공유되지 못하고 ‘특별한 식재료’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오히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우리는 ‘특별한 식재료’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평등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만이 아니라 뭇 생명,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자는 의미이다.

양종천: 단순히 식재료를 고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소비를 통해 두레생협이 지향하는 사회적, 지구적 가치를 소비한다.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두레생협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하고 이용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웰빙 열기로 유입된 많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좋은 제품’, ‘건강한 식재료’를 찾아왔지만 두레생협의 상품을 이용하면서 가치가 확대되기도 했다. 또 단순히 물건만을 소비한다고 하더라도 생산자들이 지속성을 가지고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는 측면도 있다. 아무리 좋은 가치도 지속이 어려우면 사라진다. 가치를 지키는 것과 이윤을 통해 생산자들이 끊임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병행하는 방안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 또 두레생협이 매장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매장은 두레생협이 하는 일 중에 극히 일부분이다. 지역사회의 거의 모든 시민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렇듯 자본주의와 어떻게 타협하고 어떻게 대결할 것인가의 긴장이 늘 존재한다. 이러한 긴장이 힘들게도 하지만 두레생협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Q 20년간 이어져오는 동안 결정적인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면?

김선옥: 법인화가 되고 1년 후 입사했다. 법인화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유통구조가 매우 뒤떨어져 있었다. 수·발주를 종이 장부에 수기로 적어 넣고, 물건도 1주일에 2번만 매장으로 가져 올 수 있었다. 그것도 배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생산지에 가서 실어오는 형태였다. 생산자와 소비자도 불편했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아주 고달팠다. 이미 시대는 인터넷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계산기 두드리고 손으로 영수증 써주는 것은 너무 뒤떨어진 방식이었다. 당장 직원이 아프면 물건을 가져올 수도 없고 소비자가 구입할 수도 없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이런 방식이었다. 춘천생협이 두레생협 회원사로 가입하면서 이런 시스템이 현대화됐다. 춘천생협은 생협 중에서도 지역 색이 매우 강한 편이었다. 두레생협 회원사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색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오래된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안정적인 유통을 위해서 과감히 체계를 바꾸기로 했다. 여러 단체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춘천의 지역 색을 지킬 수 있는 곳이 두레생협이라는 결론에 따라 함께하게 됐다. 그 변화가 가장 큰 변곡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왼쪽)춘천생협 1호매장 개업전 모습(2001.12.), (오른쪽)춘천생협 2호매장 모습(2003.2.)
(왼쪽)춘천생협 1호매장 개업전 모습(2001.12.), (오른쪽)춘천생협 2호매장 모습(2003.2.)

양종천: 공직에 있다가 시민활동을 시작했다. 두레생협에 관심이 많았지만 처음에는 일반 조합원으로 가입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2012년부터 감사로 4년간 활동하면서부터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감사 4년, 이사 4년을 거쳐 이번에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 가벼운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막상 뛰어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가장 힘든 것은 매일 연속으로 이어지는 장시간의 회의였다. 두레생협이 꽤 심각한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수 시간 동안 이어지는 회의를 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협동과 연대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두레생협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레생협은 현재 지역사회 활동가들을 키워내는 사관학교 역할, 여러 조직을 연결하는 중심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두레생협이 단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역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맡게 된 것이 하나의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적자가 나는 해가 많이 있었지만 두레생협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유통조직 그 이상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Q 김 전 이사장의 수고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다. 소감은 어떤가? 

김선옥: 2008년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려는 시민들이 모여 사회적기업 ‘봄내살림’을 만들었다. 학교급식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일을 시작하면서 두레생협이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이사진들과 회의한 결과 두레생협의 상황이 어렵지만 지역에서 요청하는 일이라면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며 다들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이후 사회적기업 ‘봄내살림’에 파견을 나가게 됐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두레생협이 스스로의 살길만 모색했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느꼈다. 내 조직의 현재 상황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라면 협동하겠다는 협동의 방식으로 늘 문제를 풀어냈다. 지금까지 모든 순간이 그래왔다고 자부한다. 두레생협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4년간 이사장을 했지만 이사장 혼자서 뭘 한 것이 아니고 협동의 방식으로 해왔다. 그래서 우리 두레생협은 지난 20년처럼 앞으로 20년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왼쪽)제4차 정기총회 모습(2004.2.14.), (오른쪽)춘천생협 생산자외 결성식(2004.3.16.)

Q 신임 이사장으로서 앞으로 임기동안 꼭 해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양종천: 꼭 해내야 할 특별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이어나가는 것, 두레생협의 가치를 잃지 않고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 세대, 차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선순환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총회에서 임직원이 대거 바뀌었는데 젊은 이사진이 많이 들어왔다. 많은 시민 조직들이 이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두레생협은 다행스럽게도 비교적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지난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물론 인증과 상관없이 두레생협은 어느 단체보다 사회성과 공익성을 가지고 활동해 왔지만 기왕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만큼 더욱 두레생협의 가치를 확산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겠다.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사실 세상에 별로 할 일이 없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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