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이란 무얼까? 많은 대답이 있겠지만, 오랜 시간 정직하게 노력해서 세상의 풍파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자리 잡고 살아가는 이, 이런 사람이라면 인생을 잘 살아왔다고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 사람이 부침이 심한 음식점 종사자라면 더군다나 이견이 없을 것이다.
30년째 죽림동 골목길에서 만두와 떡볶이를 팔고 있는 ‘팬더하우스’ 김응수(60세) 사장도 오랜 시간 정직하게 노력해서 자수성가를 이루었다. 김 사장을 만나 ‘팬더하우스’를 소개받았다.
20대에 장사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27살 때인 1989년에 장사를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가 3살 때입니다. 그 전에는 작은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잘 부양할 만큼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됐어요. 그래서 뭔가 내 이름을 걸고 오래도록 일할 거리를 생각하게 됐죠. 요즘이야 서른이 훌쩍 넘어도 혼자 편하게 사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젊은 나이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컸어요. 그래서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장사 한다고 모두 잘돼는 것도 아니고, 경험도 없으셨는데 많이 힘들었겠어요?
맞아요. 여기 골목에 만두가게가 10개 정도 있었어요. 만두골목이라고 불렸죠. 경력이 몇십 년 되는 사람들 틈에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로 들어왔으니,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27살 먹은 청년이 할 수 있는 거는 몸으로 부딪치는 거 밖에 없었죠. 남들 안하는 배달도 했고, 다른 가게가 메뉴를 3~4가지 할 때 난 20가지를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안하는 메뉴들, 돈가스, 볶음밥, 칼국수, 비빔밥 등등 손 많이 가는 것도 다했어요. 그러다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하나씩 줄여갔죠.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만두, 떡볶이 전문이 됐고…. 예전이나 요즘이나 낯선 곳에서 장사하려면 그냥 무조건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힘들게 청춘을 보내시는 사이 30년이 지났습니다. 감회가 어떠세요?
뿌듯하고 대견하죠. 세상 모진 풍파도 잘 버텨왔고 이 작은 가게 하나로 자식도 잘 키웠으니까. 노력, 성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이 주위에는 오래된 가게들이 꽤 많은데 튼튼하게 이어오는 몇 가게들은 진짜 노력하는 가게들이에요.
처음 시작했을 때 여긴 오랫동안 장사해 온 가게들이 많아서 웬만큼 성실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했어요. 옛날에는 명절에도 일하고 자정 넘어서까지 일했어요. 서로 경쟁하느라. 세상이 많이 변한 탓도 있지만 노력이 부족한 가게는 다 사라졌어요. 지금 남아 있는 주변의 오래된 가게들은 정말 성실한 가게들인 거죠.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남의 돈을 우습게 생각하면 벌 받아요. 최선을 다해서 죽기 살기로 해야지. 장사도 회사일도 공부도 독기 품고 해야 해요. 나는 쉬는 날도 없어요. 모임도 잘 안 나가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예요.
이 가게 말고도, 임대도 하고 있고 농장도 있어요. 만두 열심히 만들어서 나름 자수성가한 셈이죠. 정직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돌아와요.
다른 많은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하지만 다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성실성 말고 나름의 장사철학도 있겠죠?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아요. 이 가게를 방송에 소개하자는 요청도 꽤 받았는데 거절했어요. 내가 정직하게 할 수 있는 만큼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벌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방송 출연하고 유명해지면 거품이 생기고 나중에 탈이 나요.
우리 대표메뉴인 튀김만두가 3천500원이에요. 최선을 다해 만들어서 그 값을 받는데 손님들이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도 불편하고, 반대로 너무 유명해져서 제 값을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싫어요. 그런 일 많이 봐왔잖아요? 난 그저 손님이 3천500원짜리 튀김만두를 먹고 “아 제 값한다. 괜찮다”라고 만족하는 게 좋습니다. 딱 그렇게 형성되는 상거래가 나는 좋아요.
얼마 전에는 ‘백년기업’으로 신청해보라고 연락이 왔는데 안했어요. 자식들이 공무원인데 괜히 오해 사기도 싫고, 이제 먹고살만한데 뭘 더 바랄 게 있다고 그런 훈장까지 욕심내겠어요. 그냥 추천받은 걸로 기쁘고 기념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좀 전에 다녀간 손님은 아주 오랜 만에 오신 분 같아요? 저런 손님이 많은가요?
중학교 때 자주 왔었다고 하네요. 타지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춘천에 왔는데 ‘팬더하우스’가 아직 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찾아왔대요.
나는 손님들이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워요. 손님들이 “팬더하우스 없어지면 안돼요.”라고 말해요. 좀 전의 그 손님도 나중에 또 올 테니 계속 있어 달라네요.
옛날처럼 손님들과 정 나누기가 쉽지 않은데 학생시절부터 오래된 단골들이 종종 찾아와주니 옛정을 나누며 살아요.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도 계속 찾아 주니까 감사하죠.
그 분들이 바라는 대로 이 골목에 오랫동안 남으실 거죠?
몸이 따라주는 한 그럴 겁니다. 하지만 돈 때문에 일하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들도 다 자리 잡았고 손주들도 잘 크고, 부업으로 하는 다른 일도 괜찮으니까 이제 돈 욕심은 없어요.
손님들하고 정을 더 많이 나누고, 천주교 신자로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작게나마 지역에 도움 되는 일도 하고 싶어요. 이제는 사람을 남기고 싶어요.
김학찬 대학생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