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지랖] 공간에 관한 계층적 인식
[영화 오지랖] 공간에 관한 계층적 인식
  • 이정배 (문화비평가)
  • 승인 2020.06.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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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문화비평가)

주문형 콘텐츠 제작회사인 넷플릭스(Netflix)에서 봉준호 감독의 전작 영화인 <설국열차>(2013)를 드라마로 리메이크하여 방송하기 시작했다. 5월 17일 미국에서 일종의 맛보기 프로그램인 파일럿(Pilot) 에피소드가 소개되면서 많은 반향이 일어났다. 등장인물들이 봉준호의 영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적 평가를 하는 이들도 있고, 약간 변형된 구조로 전개되기에 신선함이 있다면서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실상 봉준호의 영화 <설국열차>도 동명의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저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각색 차이를 놓고 논의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 만들어지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리메이크되는 건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다. 다양한 형식과 관점에서 재해석된 작품들을 상호비교하며 감상하면 오히려 입체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에 비교할 수 있는 영화로 흔히 수직형 설국열차라고 불리는 <하이-라이즈, High-Rise>(2015)를 들 수 있다. 영국에서 제작한 <하이-라이즈>는 40층으로 이루어진 타워형 아파트가 공간적 배경이다. 배경이 되는 건물은 모든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구비되어 있어 출입이 필요 없다. 겉으로 완벽하게 보이는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갈등의 이야기가 영화 내내 전개된다. <설국열차>가 맨 뒤 칸에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면, <하이-라이즈>는 아래층에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얼마 전 매우 불편한 영화 <더 플랫폼, The Platform>(2019)이 개봉됐다. 앞선 두 영화를 더욱 극단적이고 사실적으로 몰고 간 스페인 영화다. 스페인 영화답게 표현의 강렬함을 담고 있어 보는 이들의 속을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영화의 배경은 333층의 수직 감옥이다. 한가운데로 음식이 실린 테이블이 맨 위 칸부터 차츰 내려오면 층마다 배치된 두 명의 죄수들이 음식을 마음대로 먹고 다음 층으로 넘기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앞의 영화들과 <더 플랫폼>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계층 결정이 랜덤이라는 점이다. 

이들 영화를 빈부격차나 낙수효과 등의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너무도 선명하게 정치경제적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설국열차>와 <하이-라이즈>가 계급투쟁을 독려하는 영화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면에서 <더 플랫폼>이 말하는 계급이나 계층은 지극히 임의적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층위가 달라지는데, 어떤 합리적인 원칙이나 규칙이 없다. 일부 현실을 극복해보려는 사람들이 위층으로 올라가려 노력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기도 한다. 

권위적인 사람일수록 더 넒은 공간과 높은 공간을 선호한다. 높은 층의 넓은 사무실 공간을 홀로 사용하는 고위층(高位層)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 공간을 자신의 사적 공간인양 착각하고 있는 어리석은 이도 간혹 본다. 계층이 고정되어 있어 세습되던 중세시대를 거쳐 현대에는 어느 공간도 영원히 독점할 수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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