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탄리 숲지기)

산골에 이사 와서 벌써 27년째 산을 오른다. 나무, 풀, 꽃, 뼛속까지 관통하는 햇살, 솜사탕 공기, 호수, 안개, 바람, 눈과 비는 생명의 시원 같은 존재며 보물 같아 생의 활력 속을 걷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몸에도 탄력 있는 에너지와 자연의 기운이 넘칠 것이다. 지친 삶의 무대에 배경 음악처럼, 또는 위로하듯 노래해주는 새소리와 나무들을 쓰다듬는 바람소리는 자연을 모방한 것이 아닌 천지조화의 예술이라 감동 그 자체이다.

그리고 우리 집 개들과도 그림자처럼 함께 하는데 신나게 쏘다니는 견공들도 움직이는 꽃이요 풀이다. 기쁨으로 늘 꼬리를 치며 충성을 바치고 그림자처럼 같이 하며 한 번도 게으름을 피우거나 변덕을 부린 적이 없다. 아파도 기뻐도 늘 한결 같고 심지어는 다쳐서 죽어 가면서도 꼬리를 흔들었다. 이러니 꽃이요 풀이고 동반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개들과 산을 오르면 즐거움은 배가 된다. 아침이면 먼저 현관 앞에서 산에 가자 조르고 능선과 골짜기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짐승을 쫓아 다니는 모습은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억압과 구속도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풍족한 교도소를 택해 온갖 속박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고 도시에선 심각하게 오염된 환경과 처절한 생존경쟁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헤지고 진물 나는 상처를 쓰다듬으며 지내고 있다.

숲은 무엇인가? 왜 그립고 안기고 싶고, 본능처럼 끌리고, 가고 싶은가. 숲 입구에만 들어서도 생명의 부름이 들리고 잎 냄새 꽃 향에 절로 빠져 탄성을 지르게 되는가.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런 그리움을 안고 살고 갈망만 하면서 온전히 가서 살지도 못 하고 나무와 풀과 꽃 같은 삶을 이해하지 못하며 망향가만 부를까? 숲속의 모든 것들은 고향처럼 제 자리에 있고 그 곳에서 평생을 산다. 점지된 곳에서 만족하며 사는 꽃과 나무를 보라. 늘 웃고 살며 결코 찌푸리지 않는다. 그 웃음은 세상의 향기이다. 파헤쳐진 땅을 앙팡지게 움켜쥐어 풀 한 포기도 폭우에 떠내려가지 않게 해 나무가 없는 곳에서도 나무의 역할을 한다. 잎과 머리칼은 늘 삼단처럼 푸르고 기름지다. 세상은 기쁨이 넘치는 곳이라며 늘 미풍에도 춤추며 삶을 즐기는 것 같다.

인간들도 숲속이 제 자리였는데 숲을 떠나면서 불행이 시작 되었다 한다. 모든 생명들의 고향인 어머니를 잊어가면서 정서와 낭만이 마르기 시작했고 인성의 상실이 따르고 갈등과 고통이 왔다한다. 어머니를 잊고 사는 것은 정신적인 지주를 잊고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생각나고 위안이 되고 갈 길을 가르쳐 주는 어머니를 잃고 사는 탕아와 같은 현대인들은 기쁨과 눈물마저 메말라 쇠붙이 같이 무정하고 기계 같이 차갑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사건들과 질병들의 증가를 보면 인간 세상은 작은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두렵다.  

그래서 난 외로울 때나 심적 고충이 있을 때 기도하는 심정으로 산에 간다. 아직도 풀물과 꽃물이 덜 든 나는 산에 있는 나무나 풀 한포기의 생애에 무릎 꿇고 쓰다듬고 배우고 싶다. 눈물을 바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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