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얼마 전 여름옷을 정리할 박스를 구입하러 ‘다이소’를 찾았다. 한 노인이 무인계산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다른 용무로 자리를 비웠던 직원이 뒤늦게 나타나 계산을 도와서 난처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긴 한숨을 토해내는 노인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기자도 극장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기억이 생생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키오스크’라 불리는 무인포스는 고객이 직접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단말기다. 키오스크 사용증가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편리성과 정확성, 인건비와 매장 운영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19탓에 키오스크 증가세가 더 폭발적으로 치솟고 있다. 외식업체·대형마트·영화관·병원·호텔 등에서 비대면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QR코드 인증·키오스크 결제가 일상이 됐다. 최근 《춘천사람들》의 이웃 건물 1층에도 무인카페가 생겼다. 

숙박 예약 플랫폼 ‘야놀자’가 지난해 11월 개발한 ‘와이플럭스 키오스크’의 판매량은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월 평균 63%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이 심화됐던 지난 4월 판매량은 전달에 비해 무려 227%나 증가했다.

그러나 편리함과 안전이 빚어낸 그늘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1년간 전자상거래나 키오스크를 통해 비대면 거래를 경험한 65세 이상 고령 소비자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고령 소비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확연히 드러났다.

300명 응답자 중 81.6%는 키오스크, 59.7%는 전자상거래 이용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245명을 대상으로 업종별 키오스크 이용 ‘난이도’를 평가한 결과, ‘유통매장’을 가장 어려워했다. 이어서 ‘병원’, ‘외식업’, ‘대중교통’, ‘문화시설’, ‘관공서’ 순이었다.

또한 키오스크 이용 중 ‘불편한 점’(중복응답)으로는 ‘복잡한 단계’(51.4%, 126명)를 가장 많이 꼽았으며, ‘다음 단계 버튼을 찾기 어려움’(51.0%, 125명), ‘뒷사람 눈치가 보임’(49.0%, 120명), ‘그림·글씨가 잘 안 보임’(44.1%, 108명) 등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다수의 고령소비자들이 키오스크 사용 중 시간 지연·주문 실패 등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크게 느낀다고 호소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없지는 않다. 한국소비자원과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홈페이지에서는 고령 소비자를 위한 식당키오스크 사용법, 배달음식 주문법, 극장예매법 등 동영상 콘텐츠를 게시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콘텐츠를 통한 학습이 고령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도 않거니와 실제 키오스크의 형태와 사용법은 업종과 매장마다 달라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능정보화 기본법’이 오는 12월부터 시행된다는 점이다. 공항·철도·극장·식당 등에서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과 고령자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향후 정보 취약계층의 접근성과 이용 편의를 증대시킬 수 있는 토대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언택트 시대 디지털 소외를 겪는 고령 소비자들에 대한 보다 쉽고 확실한 대책이 요구된다. 복지관 등으로 찾아가는 교육에 더해서 현장 봉사자도 필요하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노인 일자리 또는 청소년 봉사활동의 하나로 도입하는 것도 고려할만 하다. 언택트 시대가 빚어내는 문제의 해결책도 결국 사람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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