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오랜 대중음악 애호가)

‘마약이 문명을 창조했다.’ 고고학, 역사학의 상식과 마약에 관한 객관적인 요소를 비추어 보아도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말이다. 인간은 고통과 쾌락의 두 갈래 길에서 언제나 방황해왔다. 집단을 이뤄 살아오면서 즐거움과 고통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마약이나 술로 즐거웠다면 선이요, 반대로 육신이 힘에 부쳐 힘들었다면 악이었다. 즐거웠다면 선이지만 중독이 뒤따른다. 소주잔을 치켜들며 “위하여”를 외치지만 술은 거짓말쟁이다. 알콜은 현대문명 대부분에서 문화로 안착했지만 피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술도 사실은 마약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탄산음료 최강자인 코카콜라도 남미에서 재배되는 코카잎을 주원료로 생산된 제품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많은 의료진이 코카인을 진통제나 감기약으로 처방하였고 코카콜라는 즐거움과 치료 사이에서 음료수도 의약품도 아닌 모호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심신의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이상적인 삶이라 하지 않았던가? 문명을 쌓아 올린 것은 인간의 ’지혜‘지만 인간과 마약 중독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흔하게 복용하는 진통제, 소화제에는 화학적 가공이 추가된 일종의 마약이다. 

근대 이전 인간은 마약 중독작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애용한 흔적이 있다. 큰 강과 기름진 대지에서 탄생한 인류 고대 문명 주위에는 지금도 세계적인 마약 원료 공급처로 유명한 곳이 있다. 선사시대의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벽화가 남아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동굴 유적지, 아프리카 외딴곳에 있는 암벽, 가깝게는 한반도 울산 반구대의 암벽화. 약물에 의존하여 완성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고대사회 샤먼의 주술행위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남미 아마존 밀림에 분포한 아야후아스카는 아마존의 샤만들이 영적 탐구를 할 때 차로 끓여 복용한 식물성 환각제다. 실제로 인간의 의식을 연구하는 첨단 분야의 학자들도 마약에 의한 환각이 또 다른 차원의 현실을 지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철학자 사르트르,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작가 스티븐슨은 다중인격에 관한 무거운 줄거리로 화제를 모았다. 재즈 스타 루이 암스트롱은 공연 때마다 하얀 손수건에 코카인 가루를 숨겨 흡입했고 DNA 이중 나선을 발견한 프랜시스 크랙은 사고 능력을 개선하기 위해 당시 LSD라는 마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발명가 에디슨, 미술가 모딜리아니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음악계는 더욱 심각해서 3J라고 불리는 지미 핸드릭스, 짐 모리슨, 제니스 조플린은 한결같이 27살의 젊은 나이에 약물 중독으로 허무하게 삶을 마무리했다. “존 레넌은 나의 삼촌”이라며 자랑하던 록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도 먼저 간 선배들 뒤를 따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사물놀이패 김덕수, 가수 조용필, 신중현, 이승철, 전인권, 신해철 등 한때 떠들썩했던 음악계의 약물 복(이)용 사례는 많다. 

약물의존은 섭취했을 때 정신적 육체적 만족감을 동반하며 한 번 더 섭취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때 시작한다. 마약이나 각성제, 술과 담배, 커피는 물론이고 약물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후추, 고추장, 라면 역시 다시 찾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닮은꼴이다. 쾌감에의 의존이다.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인간은 마약이나 마약성이 강한 대상에 기대기는 했지만 타 생명체와는 달리 뇌를 거듭 진화, 발달시켜 왔다. 이렇게 본다면 인류가 문명을 창조하고 유지해온 큰 힘은 약물 중독과의 거리를 적정선에서 타협한 슬기롭고 현명한 판단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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