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탄리 아침 산길의 명상] 얼음 칼바람 속 마른 엉겅퀴를 보며
[고탄리 아침 산길의 명상] 얼음 칼바람 속 마른 엉겅퀴를 보며
  • 김성한 (고탄리 숲지기)
  • 승인 2021.01.04 1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한 (고탄리 숲지기)

눈밭엔 이제 키 큰 식물들만이 마르고 마른 검은 뼈 같은 육신을 드러내고 있다. 인고와 환희로 얼룩졌던 몸을 비우고 영혼마저 가벼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일 년을 사나 수십 년을 사나 그 생은 위대한 것이어서 지금 말라버려 모양도 분간하기 어려운 엉겅퀴, 석잠풀, 개망초, 익모초 등 쑥 종류 등의 모습은 사리 같다. 어느 고승의 것보다 더 영롱히. 아직은 겨울의 중턱, 저기 곧 날아가 버릴 몸들은 가는 시간 속에 몇 번 더 닥칠 큰 눈에 쓰러지리라. 흙에 묻혀 내년에 다시 날 후손들의 거름이 되고 영원한 씨앗이 되고 부활하리라.

그러고 보면 폭설에도 하늘의 큰 뜻이 있다. 키가 커 더 바람을 타는 식물들 먼저 그 무거운 가지와 육신을 꺾어 흙으로 돌아가게 하고 병든 나뭇가지나 너무 무성해 바람 탈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균형을 잡아 주려는 것이다. 더 있다. 마른 산에 물기를 제공해 여러 씨앗을 불림과 함께 산불로부터도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비 한 방울 눈 한 송이에도 깊은 뜻과 의미를 담고 있다. 바람 한 줄기 이슬 한 방울에도 우주의 뜻이 있고 의도가 들어있다고 하듯이 어느 이름 모를 식물이거나 흔히 발에 걸리는 풀포기 하나에도 다 같이 자연의 배려와 사명이 있다. 이젠 저리 땅속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엉겅퀴 한 포기라도.

엉겅퀴의 생애는 아름다웠다. 봄이면 봄대로 그 수많은 충성스러운 벌과 곤충들의 여왕이 되고 여름엔 더위에 우중충 축 늘어진 하늘에 연녹색 바탕의 분홍 꽃으로 장식을 했다. 아직도 소녀티를 벗어나지 못한 몸매의 원피스와 처음 립스틱을 바른 여자를 연상시키는 저 꽃을 보면서 청순하던 청춘의 한때를 생각했다. 초여름의 분위기는 엉겅퀴로 인해 발랄하고 탱탱해진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엉겅키는 초식동물에게 식량과 약이 되어 주지만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많은 역할을 한다. 해독제로서 간염, 간경화, 간암, 간 질환, 부종 등과 신장염, 산후, 부종, 황달, 복수 제거 등의 약성이 있어 사람을 이롭게 한다. 특히 혈관을 청소해주는 기능이 있어 뿌리로 만든 반찬은 약이나 건강식품으로 세상에 큰 이로움을 전하고 있다. 가히 온몸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산 가장자리의 여러 풀 중의 한 가지, 엉겅퀴는 이렇게 세상에 빵과 양념으로, 꽃으로, 시로 지난 한 해를 성실히 살았다. 아름답다는 말도 무색한 이런 모습은 자세히 보면 다 천국의 색과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그곳의 풍경 같은데 인간만이 이 사실을 모른 채 무심히 지나치고 있다. 자연의 은혜를 가장 모르거니와 훼손까지 하는 죄를 온몸에 짓고 살고 있다.

얼음 칼바람에도 아직 몸을 눕히지 못한 엉겅퀴의 마른 몸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일생에 눈물 한 방울 보탠다. 엉겅퀴의 일생과는 거리가 먼 나지만 어쨌거나 이별은 슬픈 것이기에 그리고 나도 그러하기를 빌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