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환 (전농 춘천농민회 회장)

지난해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지방법원 민사합의 22부 농민 1만8131명이 남해화학을 비롯한 13개 비료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인 농민들에게 총 39억4천315만 원을 배상하라고 일부승소 판결을 하였다. 2012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실사를 통해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남해화학을 비롯한 13개 비료업체들이 물량 및 가격을 사전 합의하여 16년 동안 1조6천억 원을 농민으로부터 부당이득을 챙겨 왔다고 발표했다. 공정위원회의 현장 실사 이후 2011년 비료 판매가가 2010년보다 1천22억 원이 감소한 것에 볼 수 있듯 비료업체의 담합을 통한 부당이득을 취한 것은 수입개방과 농자재값 상승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농민들에게 이중의 수탈을 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국의 농민들은 배상소송에 돌입하여 소송인단을 모집하고 10여 년 동안 사용한 비료 영수증을 모아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춘천에서도 100여 명의 농민들이 소송에 참가하였다. 막상 농민들이 소송을 시작하였지만 순조롭지는 않았다. 영수증을 모으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농민들을 설득하기가 더 힘들었다. 사회적 약자인 농민들이 거대한 농협 자회사인 남해화학과 대기업의 회사를 상대로 해서 승소를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불확신으로 인해 흔쾌히 참여를 하지 않았다. 춘천의 농민들만 해도 피해 농민이 수천 명이지만 소수 인원만 참여했다. 소송을 하는 동안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실사를 통한 손실액이 추정되었지만 재판 과정에서는 인용되지 않고 소송 당사자가 피해액을 산출해 제출해야 했고 이 손실액도 실증기관에서 승인을 받아서 제출해야 한다는 소송 절차가 힘들게 하였다. 인증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도 수천만 원이 들어갔다. 소송비를 만들기 위해 소송 당사자에게 3만 원의 비용을 걷을 수밖에 없었다. 8년 간의 끈질긴 소송 과정은 전장터였다. 1만8천여 명의 도장을 받는 일부터 서류가 수정되면 처음부터 다시 절차를 밟는 과정을 거쳐 돌아가신 농민들만 해도 수백 명이 넘었다.

남해화학을 비롯한 담합업체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시간을 끌었다.

그 이유는 민사상 공소시효를 넘기 위해서였다. 1차 승소 이후 소송을 하지 않은 더 많은 농민들이 소송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술책이었다. 소송 판결은 예상대로 공소시효가 지나서 났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농민들은 소송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농민들은 이 소송을 진행하면서 법이 결코 사회적 약자 편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피해액이 1조6천억 원이 넘는 막대함에도 실제로 배상한 금액은 40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반사회적 경제범죄를 저지르고도 수익금은 그대로 담합회사의 몫이 되어 가는 솜방망이 처벌로서는 또 다른 피해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요즘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거대한 기업을 상대로 사회적 약자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는 그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업에 막대한 손해배상을 물리자는 것이다. 농민을 상대로 한 수년간 저질러진 이 범죄에 대해서도 징벌적 처벌뿐만 아니라 공소시효도 시정되어야 한다. 춘천의 농민들에게 돌아온 배상금은 1인당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다양하다. 배상금의 액수보다 더 소중한 것은 대기업을 상대로 해서 이겼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농민들은 대기업에서 공급한 종자, 농약, 농자재 등에서 피해를 당해 왔지만 싸워서 이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농민들이 피해를 증명할 수가 없어서다. 이번 비료값 담합 피해 배상판결의 승소를 계기로 해서 종자와 비료, 농자재에 대한 다양한 피해가 발생하면 농가가 피해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업체에서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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