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디자인진흥원 최인숙 원장

빈 부지와 폐차장, 삭막한 잿빛 풍경의 공장지대인 후평산업단지 부근. 이곳은 오가는 인적마저 드물어 도심과 가까운 장점에도 어쩐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반산업단지로 출발했지만, 제구실을 못 한 지 오래. 황량한 분위기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동네에 어느 날, 생기를 불어넣어 줄 특별한 공간이 들어섰다. 바로 작년 10월에 문을 연 강원디자인진흥원이다. 광주, 부산, 대구·경북, 대전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설립된 지역디자인 거점 공간으로 강원도 디자인산업 추진을 위한 공간과 디자인문화 확산을 위한 다채로운 공간으로 구성했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디자인 거점 공간이 춘천 후평동 안에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여럿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특히 초대 원장 최인숙의 끈기와 열정 덕분이라고 많은 이들은 입을 모은다. 최인숙은 오랜 세월 디자인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쌓고, 강원디자인진흥원의 설립과 함께 원장직을 맡고 있다. 얼마 전 취임 1주년을 맞은 최 원장을 만나기 위해 후평산업단지를 찾았다. 디자인 외길인생의 여정과 진흥원 원장으로 그간의 소회가 궁금했다.

원장 최인숙

제대로 미쳐야 미친다, 반할 수밖에 없는 공간 만들기

강원디자인진흥원은 입구부터 남다르다. 초록 잔디 위의 빨간색 조형물은 그간 이 동네에서 볼 수 없었던 색채로 존재감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디어 가든’ 곳곳에 알록달록한 블록을 쌓아 만든 귀여운 작품과 설치물은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멋진 포토존까지 선사한다. 건물을 둘러싼 담장, 독특한 모양의 벽돌, 화장실 타일까지 강원디자인진흥원 안에는 최인숙 원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취임 이후 8개월간 매일같이 진행되는 인테리어 공사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점검하고 지휘한 까닭이다. 게다가 총 6개의 프로젝트와 사업을 진행하느라 숨 돌릴 틈 없이 일했건만, 최 원장은 건물 벽면을 직접 칠하기 위해 주말도 반납할 정도로 열정이 넘친다. 업무 외의 일들은 당연히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강원도를 대표하는 디자인센터라는 점에 부담감이 앞서기도 했으나 지금 완벽하게 기초를 닦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수고가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진흥원 건물은 친환경 건축물 인증을 받았기에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많은 자문을 얻었다. 친환경 건축물의 경우 디자인적 측면에서는 여러 모로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규정을 정확히 지키며 효율적인 공간을 만들고, 무엇보다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 더불어 강원도만의 디자인 철학까지 담아야 하기에 최인숙은 그렇게 워커홀릭이 되길 자처했다.

"1년을 정말 미쳐서 살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 내게 ‘이것은 도저히 안 되는 일’이라 말하면, 왜 안 되는지 반문하며 ‘되게 만드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다재다능한 학창 시절, 꿈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홍천에서 나고 자란 최인숙은 유봉여고에 진학하며 춘천과 인연을 맺었다. 회화, 펜글씨, 미술, 무용, 웅변, 성악 등 어린 시절부터 여러 방면에 재능이 넘쳤기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만능 재주꾼으로 통했다. 때때로 너무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도리어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최인숙은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고 나서는 행동대장이었으니 말이다. 연극연출에 뜻을 품고 대학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려 했지만,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최인숙은 고등학교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연극연출을 대학로 현장에서 배우기 위해서였다. 선배 언니들의 집에 얹혀살며 극단을 떠돌았다. 몇 년간은 먹고살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지만 하고 싶던 일이기에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일찌감치 키운 미술의 꿈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가 항상 미술 교재가 담긴 가방을 품에 들고 다닌 이유다.

꿈꾸는 사람에서, 꿈을 응원하는 사람으로

최인숙은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강원대학교 디자인학과 3기로 입학했다. 순수미술에 대한 열망도 있었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디자인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배움이 점차 깊어질수록 그 생각은 변했다. 디자인과 순수미술은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디자인은 종합예술에 가까웠고, 미술을 전공한 이들이 다양하게 활약할 수 있는 일종의 프로세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훌륭한 교수님들을 만나면서부터 디자인에 욕심을 가졌다. 대학교 3학년 때는 교수님들과 함께 강원도 농산물 30여 종의 포장 디자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앞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그렸다. 그렇게 대학원과 연구소를 거쳐 2007년부터는 강원대학교 디자인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의 능력을 이끌고 지도하는 일, 그게 바로 최인숙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었다.

"디자인의 본질은 배려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사소한 물건 하나도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생겼죠. 디자인에는 사람을 위한, 도시를 위한, 지구를 위한 배려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와 지식정보디자인혁신센터에서 사람들의 재능을 엮고, 사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 왔던 최인숙은 앞으로도 배려를 담은 디자인을 지원하고, 지역의 특색을 담은 디자인회사를 키우기 위해 언제나처럼 가진 역량과 열정을 모조리 쏟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지역의 디자인 인프라를 발굴하는 작업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인 욕망으로 움직이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창조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강원도, 춘천에서만큼은 디자이너가 꿈꿀 수 있고, 잘 살 수 있는 꿈의 터전이 마련되길 바란다.

‘Design is Life, Life is Design’

‘Design is Life, Life is Design’은 강원디자인진흥원 개원 기념 기획전시의 제목이자, 진흥원의 방향성과 미래를 상징하는 테마다. 그리고 인생의 8할을 디자인과 함께한 최인숙의 삶을 꼭 닮은 말이기도 하다. 이곳 후평산업단지 인근에는 머지않아 복합문화센터가 들어온다. 그날이 오면 이웃이 될 센터와 담을 허물고 자유롭게 교류하고 싶다. 경계를 허무는 것을 시작으로 함께하는 일들이 많아진다면, 분명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강원디자인진흥원의 원장으로서 꿈을 이야기하는 최인숙은 분명 사업가 경향이 다분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작가의 꿈을 꾼다.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또 학회장으로 마음에 뜨거운 불씨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후에는 작은 갤러리와 작업실을 차리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해맑은 모습에서 ‘꿈꾸는 삶은 언제나 청춘’이라는 말을 불현듯 떠올리게 된다.

이나래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