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학연구소 ‘시민기록단’

이미 알려졌듯이 춘천학연구소는 시민의 삶을 기록하여 춘천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사업인 ‘구술채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최근 창간호가 발행된 매거진 《춘천인》이다. 올해 3권이 더 발행될 《춘천인》은 시민들 각각의 구술기록을 쉽고 재밌게 편집해서 잡지 형태로 한 권에 담아 냈다. 그 과정에서 ‘구술채록’이라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시민기록단’이다. ‘구술채록사업’을 맡고 있는 유명희 춘천학연구소 학예연구사와 시민기록단 1기 활동가를 만나 이모저모를 들었다.

시민의 삶을 기록하여 춘천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사업인 ‘구술채록사업’의 하나인《춘천인》창간호 발간에 참여한 ‘시민기록단’ 1기 김학찬(왼쪽)·이은경(가운데) 씨와 사업담당자인 유명희 춘천학연구소 학예연구사(오른쪽).

시민기록단의 소개와 기록단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유명희 | 춘천학연구소 연구사

먼저 《춘천인》은 한 개인의 생애를 온전하게 기록해서 춘천 역사의 한 면을 담고자 한다. 어렵겠지만 희망은 1년에 시민 100명씩 10년 동안 시민 1천 명의 삶을 담고 싶다. 시민기록단은 그분들을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묻고 기록하는 역할을 한다.

매거진 한 호마다 한 기수의 기록단이 구술채록을 맡는다. 창간호를 위해 힘써 준 1기 17명에 이어 시민기록단 2기가 5월에 발간 예정인 《춘천인》 2호를 위해 열심히 활동 중이다. 3기는 한림대 글로컬융합인문학 전공의 김아람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진행하고, 4기는 다시 시민들을 모집해서 구술채록을 진행할 계획이다. 3호와 4호는 하반기에 발행할 예정이다.

김학찬 | 대학생 

강원대 분자생명과학과 인문예술치료학과 복수전공 4학년이다. 독립 매거진을 만드는 청년커뮤니티 ‘20’s 천의 매력’의 창간호 《천의 매력》을 준비하던 지난해 봄, 우리 커뮤니티로 시민기록단 활동 제안이 들어왔다. 이후 동료 두 명과 함께 참여해서 여름에 활동했다.

이은경 | 주부

춘천문화원의 지역역사문화반에서 공부하던 중 시민기록단을 알게 됐다. 춘천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서 지원했다.

시민기록단 1기 17명이 지난해 5월 말 춘천학연구소에서 박현숙 옛이야기놀이연구소장으로부터 구술채록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춘천학연구소

 《춘천인》 에 등장하는 구술자는 어떻게 선정했고,   《춘천인》 이 왜 필요한가?

유명희

구술자 선정 기준은 토박이, 춘천에서 한 가지 일에 최소 30년을 종사한 사람, 마을을 잘 알고 있고 인상적인 스토리를 지닌 사람이다. 때문에 젊은이가 아닌 어르신들이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일상의 삶이 모여 사회가 되고 한 국가의 역사가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구술채록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전국적인 채록으로는 《시집살이 이야기 집성》, 《한국전쟁체험담》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지역 단위 채록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춘천은 늦은 편이다.

이은경

구술자 발굴은 기록단이 최대한 스스로 하려고 했다. 여의치 않은 경우 춘천학연구소에서 각 기관에 의뢰 후 추천받은 인물을 인터뷰했다. 나는 수소문 끝에 지인의 소개로 의미 있는 두 분을 만났다. 구술자 어르신들 거의 모두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기록으로 남기려 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거듭되면서 면담자도 구술자도 평범한 시민의 삶이 모여 춘천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데 공감했다. 지역의 역사를 온전히 파악하고 기록하려면 시민의 미시사(微示史)가 필요하다.

구술채록 과정을 들려 달라.

김학찬

춘천MBC 청원경찰로 퇴직한 애막골 경로당 노인회장 박민선 님을 인터뷰했다.

처음엔 춘천MBC 경비로 일했는데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며 ‘청원경찰’로 직책을 바꾸라는 명령에 따라 총을 메고 근무를 서게 된 이야기, 강원일보사와 춘천MBC가 《강원일보》와 한 건물 한 경영자 밑에 있다가 분리되어 공지천 사옥으로 이사한 이야기 등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 흥미로웠다. 큰 역사가 아닌 작은 역사 이야기가 주는 생동감 말이다.

이은경

이해승, 유연경 두 분을 만났다. 이해승 님은 농협 직원을 거쳐 강원도 부동산중개사 1호이자 늦깎이 한국화가이고, 유연경 님은 교동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동장을 지냈고 시의원도 했다.

두 분이 살아오며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통해 현재의 춘천이 걸어 온 길의 한 면을 생생하게 알게 됐다. 직접 찾아뵙고 한 분당 2~3시간 정도 구술을 진행했는데 한 번의 만남으로는 그분들의 삶을 온전히 전할 수 없어서 2~3차례 더 방문했다. 모두 80대이신데 기억도 잘하시고 소통도 수월했다.

(왼쪽) 시민기록단 1기 김학찬 씨가 춘천MBC 청원경찰로 퇴직한 애막골 경로당 노인회장 박민선 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시민기록단 1기 이은경 씨가 교동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동장을 지낸 유연경 씨와 신북읍 텃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춘천학연구소

춘천에서의 첫 시도였으니 힘들거나 아쉬운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이은경

처음 해 보는 인터뷰라 많은 게 낯설었지만 채록과정은 특별히 힘든 건 없었다. 다만 구술을 토씨 하나 빠짐없이 그대로 옮기는 ‘전사작업’이 힘들었다.

김학찬

코로나19로 인해 워크숍을 한 번밖에 하지 못했지만 독립잡지를 만든 경험이 있어 활동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굳이 꼽자면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시간에 모두 채록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경로당에서 어르신을 인터뷰하는데 주위에 있던 분들이 한 말씀씩 보태느라 이야기가 다른 길로 빠지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등 맥락을 잡아 가는 게 힘들었다. 종종 정신없는 순간이 벌어졌다.(웃음) 

유명희 

힘든 작업이라 그런지 1기 이후 다시 참여하는 분은 두 분밖에 없다. 2기 시민기록단 총원도 7명뿐이다. 전사작업비와 원고비 외에 활동비도 제대로 챙겨 드리고 싶은데 쉽지 않다. 활성화시킬 방안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대장정의 첫 걸음을 함께 했다. 보람이 컸을 것 같다.

이은경

어르신들이, 당신들의 삶이 기록된다는 것에 크게 기뻐했다. 특히 《춘천인》 창간호를 전해 드릴 때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2호에는 ‘교동’을 입체적으로 소개하는 코너를 맡아 참가한다.

유명희 

처음엔 어떻게 책을 만들지 고민이 컸는데 막상 나와 보니 어떻게 알려야 할지가 큰 고민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소문이 잘나서, 본인도 구술자로 참여해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연락이 꽤 온다. 결국 춘천의 삶을 간직한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한 것도 보람이다. 그분들이 건강하실 때 좀 더 부지런히 《춘천인》을 발간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커졌다. 또 하나, 《춘천인》을 관내 학교에서 글쓰기나 독후감 자료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도 생겼다.

김학찬

80세 어르신의 인생을 들으면서 윗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어르신들이 평소 권위주의 시절을 옹호하고 그 시절을 향수하는 말씀들을 종종 하시는데 이전에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터뷰 중에도 솔직히 답답함을 느끼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옳고 그름을 떠나 그분들의 마음이 이해됐다. 그 때문인지 활동 이후 원주에 계신 외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졌다. 더 많이 보고 싶고 전화도 더 자주 드린다.

대학졸업 전에 정말 좋은 경험이 됐다. 물론 취업에 도움 되거나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지식을 얻은 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다. 타인을 이해하게 됐고 내 스스로도 좀 더 성장했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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