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호(교사, 전 도교육청비서실장)

고교학점제란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하고, 기준 점수에 도달한 과목의 이수 학점을 누적하여 졸업하는 제도를 말한다. 지금은 2/3 이상 출석하면 성적과 무관하게 학년이 올라가고 졸업할 수 있지만,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출석 일수에 더해 과목 점수가 40점을 넘어야 진급과 졸업을 할 수 있다.

언뜻 보면 학생에게 교과 ‘선택권’을 주고, 졸업 자격을 대학교 방식으로 변경하여 고등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하는 제도다. 대학입시를 위해 학교에 다양한 교과를 개설하여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경감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교학점제가 교육 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교육 불평등을 얼마나 심화시키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먼저 ‘선택권 보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학생이 자신의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게 한다는 ‘선택권 보장’은 과연 올바른 교육 방향일까. 그렇지 않다. 진로를 이른 나이에 결정하는 것이 모든 학생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개인마다 다른 성장 속도, 환경, 소질과 관심사 등 획일적인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한 변인들이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교학점제는 모든 학생에게 ‘조기 선택’을 ‘강제’하는 꼴이다. 천천히 선택할 자유는 박탈되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따위로 표현되는 예측 불가의 미래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10대 중반을 갓 넘어선 나이에 진로와 적성을 결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진로를 너무 일찍 정하라고 한다. 나는 진로를 못 정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네 진로가 뭐냐?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고 싶냐’고 자꾸 묻는다. 나이 들어서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많은데, 고등학교 2학년이 아직 진로가 없다고 무슨 큰 잘못인 것처럼 말한다.” 고교학점제 시범학교에 다녔던 어느 고교생의 말이다.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고교학점제와 대학입시의 상관관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고교학점제는 모든 학생에게 진로와 적성을 서둘러 결정하라고 강제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진로와 적성의 선택은 대학 진학으로 직결된다. 부모의 경제적·문화적 자본의 혜택을 누린 성적 상위권 학생들은 일찍부터 자기 미래 직업을 결정할 수 있다(물론 그들도 선택을 강요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상층 귀족사회의 자녀 교육 양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듯이, 고액 과외수업과 입시 전략 컨설팅, 생활기록부에 올릴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스펙 디자인으로 무장한 금수저 학생과 중산층 이하 흙수저 학생의 경쟁은 출발부터 공정할 수 없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모양새다. 

학생의 미래를 염려하는 많은 교사들은 고교학점제가 대학입시체제를 지금보다 더 복잡하게 왜곡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복잡한 입시체제는 학생들의 어깨를 더 짓누를 것이고 서민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은 지금보다 더 가중될 것이다. 고교학점제는 이른바 ‘SKY’, ‘in 서울’로 표현되는 무한 입시경쟁을 세련되게 포장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라는 합리적 의심을 벗기 어렵다. 더 나아가 아직 진로 결정을 하지 못한 학생, 대학 진학이 아닌 다른 진로를 준비하는 학생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학생을 공교육 체제 밖으로 내팽개치는 것이다.

역대 정부는 교육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싶은 정치적 욕심이 앞선 나머지 설익은 정책을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과 ‘집중이수제’, 박근혜 정부의 ‘자유학기제’, 문재인 정부의 ‘대입 정시 확대’ 따위가 그것이다. 교육 문제의 본질은 외면한 채 현실을 왜곡한 정책들을 남발한 결과 학생, 학부모에게 고통과 혼란만 가중시켰다. 결국 실패한 공약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고교학점제도 이 목록에 추가될 운명이다. 지금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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