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똑!똑!똑! 노크 소리에 눈을 돌리니 출입문 투명창에 통통하고 사랑스런 얼굴이 배시시 웃는다. “종윤이 낮잠준비 하는구나? 들어와.” 나는 투명창을 등지고, 가능한 안쪽으로 돌아서서 종윤이의 옷 갈아입기를 돕는다. “친구들이 보면 안 돼” 하는 유난을 보이진 않는다. 어린이집에서는 만 3세, 다섯 살까지는 낮잠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다섯살반’의 낮잠은 한 시간 남짓, 시간이 길지 않고, 대부분 편안한 옷을 입고 등원하기 때문에 가정에 따로 잠옷을 부탁드리진 않는다. 그 중 한 명 종윤이는 실내복 한 벌을 월요일마다 가져와 낮잠시간에만 갈아입고 잔다. 실내복으로 갈아입으려고 사무실로 온 것이다.

두 살, 세 살 아기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저귀를 간다. 기저귀를 갈 때마다 아기들을 사무실로 따로 데려오진 않는다. 그러나 대체교사로 온 낯선 선생님이나, 충분한 관계형성이 된 교사가 아닌 다른 교사가 무심히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일도 없다. 기저귀를 갈아 줄 교사는 먼저 아기에게 이야기한다. “기저귀를 갈아 줄 거야.” 이야기를 들은 아기는 놀랍게도 몸을 이완하고 호의적으로 협조한다. 교사들은 일상에서 아이의 발달에 따라 사적인 부분이 보호받고 존중받는 경험이 일어나도록 돕는다.

유아반이 되면 친구에 대한 호감을 직접 표현하고 싶어 한다. 삐뚤빼뚤 ‘사랑해, 놀자’ 쓰거나 색연필로 정성 들여 그린 편지를 친구에게 내민다. 간혹 좋아하는 친구를 안아주고 싶어 하기도 한다. 교사는 “누군가가 좋아서 안아주고 싶을 때는 먼저 안아줘도 되는지 물어보는 거야” 하고 안내한다. 교사의 안내를 받은 아이는 “안아도 돼?” 하고 물어보고 상대 아이가 “응 좋아” 하고 대답하면 그때서야 안아줄 수 있다. 어린아이들끼리 무슨 그런 예의를 차려야 하나 의아해할 수 있지만, 내 마음을 표현할 때, 상대의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몸에 익히게 하려는 것이다. 나누어 갖기, 편지 전하기, 친구와 손잡고 걷기, 어깨동무하기, 안아주기.... 모두 친사회적 행동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라도 속옷으로 가린 부분을 보여 주거나, 혹은 보려고 하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교육을 통해 알려 준다. 아이들은 화장실도 함께 가고 싶어 한다. 친구와 화장실 앞까진 함께 갈 수 있지만 용변을 볼 때는 혼자만 들어가야 함을 반복적으로 안내한다. 친구의 용변 보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내가 용변 보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임을 유아기부터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시간 아이들의 놀이를 동반하는 외국인 선생님이 처음 오셨을 때도 선생님의 허락 없이 매달리거나, 얼굴, 몸을 만지는 것은 선생님을 불쾌하게 할 수 있음을 먼저 안내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험한 이야기들이 잊혀질 새 없이 뉴스에 오르내리니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기사들을 접하면, 절로 아이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든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알아채, 보호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불안감으로 부모들의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그 불안감이 때로 영아들 사이의 단순한 놀이를 성행동으로 착각하게도 하고, 말을 배우는 시기의 아이들이 뜻 없이 내놓은 말에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게 하기도 한다.

가정에서, 유아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친구에게 무심코 한 행동이 문제행동으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성교육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존중” 경험이다. 생활습관과 삶의 기본적인 태도는 유아기에 벌써 그 바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지나치게 예의를 차려 옷을 입을 필요는 없지만, 가족 내에서도 개인적인 부분은 지켜지기를 제안한다. 샤워 후에는 가볍게라도 옷을 입고 나오기, 옷을 갈아입을 때는 가족끼리라도 보호해 주기,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니지 않기, 남자아이라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용변 보게 하지 않기... 만 3세 이후 가정에서 경험해야 할 일상생활이다. 존중받은 아이는 친구를 존중할 수 있고, 존중받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아 그렇지 못한 상황이 되었을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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