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전문스태프협동조합 all’

제38회 강원연극제가 열렸던 속초에서 며칠 후에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열리는 평창으로 이동한다. 원주, 태백, 정선, 홍천, 서울, 제주까지. 공연무대가 펼쳐지는 곳으로 언제든 짐을 꾸렸다가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는 삶이 익숙하다.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를 종횡무진 활약하는 ‘공연예술전문스태프협동조합 올(all)’의 이야기다. 

화려한 조명 속 열정적 에너지를 뿜어 내는 한 편의 공연이 마음에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작품 내용이나 배우의 연기가 탁월했겠지만, 그와 더불어 무대의 인물과 공연 내용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 주는 건, 어둠 속에서 그들을 밝혀 주는 스태프의 분주한 손길 있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서 매 순간 함께 호흡하는 각 분야의 전문 스태프는 공연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다. 현장 예술의 특성상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고, 무엇보다 안전하게 마무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소통능력이 요구되는 스태프의 세계. 공연예술의 진가는 좋은 스태프와 좋은 공연이 합을 이뤘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하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모두에게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 모인 단체 ‘공연예술전문스태프협동조합 all’(이하 ‘all’)은 연극, 무용,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전통예술 등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 장르의 백스테이지를 책임지는 전문가 8명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역할과 전문분야로 세분화된 공연예술 스태프 중에서 all이 주력하는 파트는 무대감독, 조명디자인, 기술 분야다. 앞으로는 점차 전문영역을 확충해 나갈 계획으로, 현재는 무대감독 강상민, 조명감독 남궁진, 기술감독 민경욱 세 명의 핵심 인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오래전부터 ‘따로 또 같이’ 활동하던 이들이 협동조합 형태의 법인을 만들고자 합심한 것은 이 분야에서 일하는 선후배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 위함이다.

“무대 전문 스태프는 보통 프리랜서 형태로 일합니다. 1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지요. 혼자 일을 만들어야 하며 영업과 홍보도 합니다. 결과에 대한 책임과 일의 방향성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또한, 결혼이나 집을 마련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에 4대 보험에 가입되지 못해 금융기관에서 운용하는 여러 제도를 이용할 수 없을 때도 있고요. 혼자 버티지 못해 다른 직업을 찾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불안한 하루를 사는 선후배들에게는 소속감과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해 주고 싶었고, 지역에서 같이 일할 수 있는 전문 스태프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기투합했죠.”(강상민 대표)

작년 초부터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많은 공연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2020년 4월 21일에 설립한 all 역시 관객이 없는 무대나 일부 변형된 형태의 공연무대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함께한 지 1년이 됐지만, 아직 정식으로 달려왔다는 느낌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공연계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활동했던 사람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하나의 법인으로 뭉쳐지며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 시스템을 고민하다

춘천시 중앙로에 있는 all 사무실. 출퇴근에 자유로운 편이고, 구성원의 대다수가 주로 현장에 있을 때가 많아 전체 구성원이 모인 풍경은 흔치 않다. 바쁠 때는 주말도 없이 일하고, 1월부터 3월까지는 공연계의 비수기라 자기계발의 시간을 보내거나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공연무대가 거의 사라졌던 작년의 경우는 춘천문화재단과 함께 공연예술 스태프 아카데미 ‘막’을 진행하기도 했다. 공연예술 스태프의 역량  강화와 하반기에 다가올 축제와 공연 스태프 인력난에 도움이 되고자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all이 이와 같은 자체 교육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회사에 누군가 입사했을 때의 교육용 프로그램이고, 또 한 가지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크루(crew) 형태로 일할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스태프 분야에 관심과 재미를 느끼게 하고, 더 나아가 함께 일을 도모할 청년들을 성장시키려는 이유다. 무대 전문 크루가 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쌓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배울 학교나 교육과정은 지역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보통은 서울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 스태프로 일을 시작하는데, 자신의 이름을 건 공연무대를 만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와 반대로 지역에서 지식과 경험을 쌓고 서울로 올라가는 방법이 더 빠를 수 있다. 오히려 지역의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언젠가 문화예술 스태프 분야 인력을 위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싶어요. 춘천에서 교육이 이뤄지고 춘천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연극이든 조명이든 서울에서 배우고 일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죠. 반드시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지역 현장에서 자생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거든요.”(남궁진 대표)

공연무대에서 만나 공연무대를 만들다

조합의 주축이 되는 대표 세 명의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춘천의 대표 축제인 춘천마임축제에 이르게 된다. 춘천이 고향인 강상민은 마임축제에서 통역을 맡았던 친구를 통해 2002년부터 축제와 인연을 맺었고, 같은 해에 KBS에서 세트 관련 일을 하던 민경욱이 공연예술전문 스태프의 길에 들어섰다. 연기와 연출을 전공했으나 조명에 흥미를 느껴 학업과 스태프를 병행하던 남궁진은 서울 대학로에서 일하다 2009년에 지인의 부탁으로 마임축제 스태프로 참여했다. 그때의 만남이 결국 그를 춘천으로 이끌었고, 함께 무대를 완성해 간 시간이 켜켜이 쌓여 오늘날의 all을 만들었다.

“이쪽 업계에서는 춘천이 꽤 경쟁력이 있는 도시에요. 강원도 곳곳에서는 여러 공연과 축제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특히 춘천에는 극장이 많죠. 서울에서의 공연도 많은데, 안산이나 인천 같은 지역보다 대학로까지의 접근이 더 쉽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민경욱 대표)

일 년 내내 축제와 공연이 벌어지는 도시 춘천은 이제 자타공인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언젠가는 공연과 축제 전문 스태프가 가장 일하기 좋고, 꿈꾸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어쩌면 공연예술전문스태프협동조합 all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잠시 거리를 두고 무대를 즐겨야 하지만, 이들과 같은 ‘공연쟁이’들이 춘천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활약하게 될 날을 기다려 본다.

이나래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