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춘천으로 이주한 지 3년차에 접어들었다. 문득 춘천에 막 도착했을 때 만난 택시기사님이 한 말이 떠오른다. “춘천은 군인하고 공무원뿐이야. 청년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많이들 떠나가지.” 이제 막 왔는데 힘 빠지는 말씀을 하셔서 시무룩했다. 하지만 일 못 구해 떠나지 말고 마음 굳게 먹고 잘 정착했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읽혀 이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거리를 찾아봤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내게 선택지는 핸드폰에 일자리 소개 앱을 깔아서 이리저리 훑어보는 것뿐이었다. ‘오전 7시~12시, ○○회사 택배 물류 하차’. 일명 ‘까대기’였다. 체구가 작고 근육도 별로 없었지만, 딱히 대안도 없었고 스스로 참아내는 건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했다.

면접을 보러 갔다. 팀장은 내게 사는 곳, 무거운 건 들어 봤는지 정도를 물었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주부터 일을 나올 수 있는지 물었다. 복잡한 일이 아니니까 자세히 물어 볼 건 없겠지 싶었지만, 또 너무 바로 일을 권유하니까 일손이 갑자기 부족해졌나 싶었다.

일이 많았다. 1천500에서 2천 상자 정도를 실은 대형 화물차가 오전에 15~6대 정도 들어왔다. 3명이 한 조가 되어 오는 차의 절반인 7~8대를 맡았다. 쉽게 얘기해서 한 사람이 오전 내내 5~6천 상자를 나르는 셈이다. 차가 컨베이어벨트 시작점에 주차하면 나와 동료들은 차에 가득 찬 물건들을 하나씩 벨트 위에 올렸다. 그러면 택배기사님들은 상자들의 송장을 보고 물건을 찾아 실었다.

성벽처럼 높고 군대처럼 많은 택배상자를 최대한 빨리 공략했다. 빨리 날라야 빨리 배송되기 때문이다. 팀장은 우리의 뒤통수에 대고 조별 경쟁을 시키며 더 빨리하기를 재촉했다. 거의 던지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무거운 물건을 빨리 날랐기에 많이 다쳤다. 상자 모서리에 머리와 가슴팍이 찍혔고, 차 벽과 컨베이어벨트에 팔꿈치와 다리가 긁혔다. 손가락이 여러 번 삐었고 매일 허리에 파스를 붙여야만 했다. 작은 상자들은 꺼끌꺼끌한 마대 자루에 꾸역꾸역 담겨 있는데 그 무거운 자루를 들어 옮기다가 손톱 사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 있긴 있었다. 2시간에 한 번,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 잠깐 쉬었다. 15분 쉰다고 듣고 왔는데 팀장이 자꾸 시간을 어겨 10분도 채 못 쉬었다. 너무 힘들어서 쉬는 시간 좀 지켜 달라고 팀장에게 얘기했다. 처음 겪는 아르바이트생의 당돌한 발언에 팀장은 멈칫했지만 결국 받아들였고 다음날부터는 15분을 온전히 쉬게 되었다. 갑을관계에서 아르바이트생이 해고를 무릅쓰고 입을 떼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5분이라는 시간이 이토록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정이 있어 두 달 남짓 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벌써 1년 반 전 얘기다. 며칠 전 우연히 일하던 곳을 지나쳤다. 건물이 더 커져 있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류가 급증해 컨베이어벨트를 더 설치한 것 같았다. 대기하는 화물차도 더 많아졌다. 쉬는 시간이 다시 줄진 않았을지 걱정되었다. 최근 택배노동자들의 사고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수익이 늘어나는 만큼 노동환경도 좋아지면 좋을 텐데 현실은 결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것 같다. 춘천의 청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회용품 취급받지 않는 춘천을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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