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s STORY] 이주여성의 차별받지 않고, 구별되지 않는 자유로운 꿈 꾸기
[SHE’s STORY] 이주여성의 차별받지 않고, 구별되지 않는 자유로운 꿈 꾸기
  • 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 승인 2021.08.0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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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지난 4월 막 개소한 상담소에 가정폭력 피해자인 이주여성 A씨가 찾아왔다. 2010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시집온 A씨는 지금도 남편과 시댁 식구들만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A씨는 가족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배우고 싶었으나 시댁 식구들과 남편은 A씨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조건 집에만 있으라고 했고 청소하고 밥하고 시어른을 돌보는 것만이 A씨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견딜 수 있었다. A씨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폭력과 모멸감이었다. 입국 초기부터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A씨를 유령 취급했다. 집에 손님이 오면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했고 남편은 술만 마시면 폭력을 행사했다. 임신 중에도 구타를 당했다. 경찰에 신고 한 날은 폭력을 행하던 남편이 흉기를 들고 다 같이 죽자며 방문을 걸어 잠근 날이었다. 사회적 약자는 자기의 피해를 설명할 만한 언어를 가지지 못한다. 대부분의 이주여성들 또한 마찬가지다. 폭력피해를 견디다가 죽을 것만 같을 때 언어가 아닌 몸으로 자신을 설명한다. A씨가 집을 나와 상담소를 찾았을 때 A씨는 언어가 아닌 피해 받은 몸으로 자신을 설명했다. 현재 A씨는 상담소의 법률지원을 받아 이혼소송 중이며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직장에 다니고 있다. 

밀레니엄 이후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정부가 폭력피해 이주여성 보호시설(28곳),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다누리콜) 등을 통해 노력했지만, 사각지대 이주여성들의 안전한 상담과 보호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지난 2019년부터 정부는 이주여성의 안전한 상담과 보호를 위해 이주여성상담소를 전국에 설치하고 있으며 강원도에도 여덟 번째로 강원이주여성상담소를 개설하게 되었다. 강원이주여성상담소에서는 중국어와 베트남어 필리핀어를 자국어로 하는 원어민 상담사가 상주하며 자국어 상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개소 이후 강원이주여성상담소의 4월부터 7월까지의 상담통계는 이미 700여 건을 넘기고 있다. 상담유형별 통계를 보면 국제결혼과 관련한 제반 상담과 출입국 관련 민형사상 상담, 이혼상담, 자녀상담 등이 있으며 가정폭력에 대한 상담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현장에서 이주여성의 인권침해사례가 많다는 방증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결혼이주여성 920명 가운데 가정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42.1%에 달했다. 10명 중 4명이 폭력피해를 경험했다. 가정폭력 유형은 심한 욕설이 81.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한국 생활 방식 강요(41.3%), 폭력 위협(38%), 생활비 미지급(33.3%), 성행위 강요(27.9%), 부모·모국 모욕(26.4%) 순이었다.

2007년 19세의 후안마이가 남편에게 폭행당해 18개의 늑골이 부러진 채 사망했고 같은 해 3월, 22세의 레티김이 감금된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문을 타고 내려오다 추락사했다. 남편의 반대로 레티김의 시신은 1년이나 고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가정폭력은 이주여성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다.

‘몇 개를 더 구할 수 있냐’는 1970년대 파독 간호사를 ‘한 명’으로 호명하지 않던 시대에 서독 내 한국 간호사를 지칭하는 언어였다. 더 멀리 100년 전 하와이 이민사가 존재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 참담한 이주의 역사를 딛고 대한민국은 세계 9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며 많은 이민자들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주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국가의 국민이 된 것이다. 인권 운동가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기조연설에서 인권은 거창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일상적인 문제라고 했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식탁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웃을 만나는 마트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구별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과거 간호사로 노동 이주를 했던 파독간호사들은 “조국과 독일 두 개의 뿌리가 있어 잘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우리나라로 이주한 그녀들이 “조국과 대한민국 두 개의 뿌리가 있어 잘 버틸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도록 할 때가 되었다.

오늘도 강원이주여성상담소는 상담소를 찾아올 이민 배경의 사람들을 위해 상담소 문을 낮추는 연습을 한다. 가부장 사회가 뚜렷한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약자인 이주여성들에게 자기를 설명할 언어를 되돌려 주기 위해, ‘일요한글 학교’를 개설했다. 주 6일 토요일까지 일한 그녀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일요학교에 오면, 그녀들이 “조국과 대한민국 두 개의 뿌리가 있어 잘 버틸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도록, 구별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정당하고 자유로운 이주여성의 삶이 되도록 강원이주여성상담소는 그녀들과 함께 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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