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로 본 춘천] 청평산 식암과 찻물 터
[漢詩로 본 춘천] 청평산 식암과 찻물 터
  • 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장)
  • 승인 2021.11.02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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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장)

청빈과 탈속의 상징 식암

청평산에서 청평사를 지나 계곡을 오르다 보면, ‘청평선동(淸平仙洞)’에 들어서게 된다. 매월당 김시습은 청평산에 머무를 때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이곳에 줄곧 머물렀다. 청평선동이란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이 글자는 ‘청평식암(淸平息庵)’과 함께 진락공 이자현이 새겨놓은 것이다.

식암은 이자현이 청평산으로 들어와 37년간 주로 거처하던 공간이다. 식암은 그 규모가 매우 작아서, 무릎을 굽혀야만 머무를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며, 그 생김새가 새의 알과 같아서 곡란암(鵠卵庵)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성호 이익은 자신의 문집에 식암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성호 이익이 기록한 이자현과 식암

이자현은 청평산에 들어가 문수원을 짓고 살았는데 특히 선설(禪說)을 매우 좋아하였다. 골짜기 안의 그윽하고 깊은 곳에다 식암을 지었는데, 마치 고니 알과 같아서 단지 양쪽 무릎을 포개어 앉을 만한 크기였다. 그 안에 묵묵히 앉아 좌선하였다.

 

淸平山大菴居小 청평산 크고 거처하는 암자는 작아

相國有弟爲匹夫 상국의 아우는 필부가 되었다네.

菴居不出至老死 암자에서 늙어 죽도록 나오지 않았으니

一生忍辛胡爲乎 평생토록 인내하며 어찌 살았을까.

謂爾循名子 그대 명예 좇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淸高世間非難圖 맑은 고고함 세상에서 도모하기 어렵지 않네.

謂爾嗜貨者 그대 재물 좋아하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容膝以外皆空無 무릎 들일 공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네.

世皆掉臂我閉眉 세상이 모두 떠나가도 나는 눈을 감았고

人爭毁譏不轉顱 사람들 훼방과 원망에도 돌아보지 않았네.

山外彌天禍罟張 산밖에 하늘 가득 재앙의 그물 펼쳐놓아도

山中一片安身區 산속 한 편에서 편안히 몸을 보전했네.

司馬牛後武攸緖 사마우의 뒤에 무유서가 있었듯이

海東亦有男兒軀 해동에도 또한 훌륭한 사내가 있었네.

曠世相感惟退翁 오랜 뒤에 감동하신 이는 오직 퇴옹으로

說得心迹如畫模 마음의 자취를 그림을 그리듯 설명하셨으니

嗚呼 오호라!

不然幾蒙千載誣 그렇지 않았다면 천년 억울함 입었으리라.

이익, 곡란암(鵠卵庵), 《성호전집》 

조선 선비의 엇갈린 이자현 평가

진락공 이자현이 살던 시기는 고려 시대로 불교가 국교였다. 반면에 조선은 주자학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 국가였다. 조선 선비라면 춘천을 방문할 때 당연히 찾았던 곳 가운데 하나가 청평산이었다. 그러나 유교를 신봉했던 조선 선비들은 식암에 평생을 머물며 몸을 닦았던 진락공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남겼다. 특히 《고려사》에 사관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오직 퇴계 이황만이 이자현의 청빈 정신을 높이 여겼고, 그것을 글로 남기었다. 이에 성호 이익 또한 퇴계의 평가를 계승하여 진락공의 높은 정신세계를 찬양하는 글과 시편을 남겼다.

찻물 터인가, 세수 터인가?

식암 근처 너럭바위에 두 개의 직사각 모양의 홈과 두 홈의 물길을 연결하는 긴 홈이 파여 있다. 이를 두고 ‘진락공이 손발을 씻던 물그릇 (관분(盥盆))이다’라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연유로 관광 안내판에도 ‘진락공 세수터’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가서 보면 이곳이 세수 터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조선 유자들이 불교에 심취해 있던 이자현을 비하하고자 세수 터로 명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대체로 고려 시대 왕실과 상류층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유행하였고, 진락공 또한 차를 즐겼고 임금으로부터 여러 차례 차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한다면 이것을 찻물을 뜨기 위해 만든 시설로 보면 좋지 않을까? 진락공 이자현은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춘천 다인(茶人)이다. 진락공이 춘천에 차 문화를 들여오고 차를 즐긴 장소가 식암인 점을 감안(勘案)한다면, 이곳이 춘천 최고(最古)의 차 유적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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