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학] 또 한 살을 먹는구나
[삶과 문학] 또 한 살을 먹는구나
  • 심현서(소설가)
  • 승인 2021.12.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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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현서(소설가)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어도 서럽다 하거늘 짐을 조차 지실까

선조 13년(1580),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지은 연시조 훈민가(訓民歌: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노래) 중 마지막 연인 16연을 소개한다. 훈민가는 주로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16연은 경로사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난 이 시조를 보며 조금 엉뚱한 생각을 한다. 조선 시대에는 젊은이가 이와 같은 말을 하며 늙은이에게 다가간다면, 늙은이는 ‘고마워, 젊은이.’라고 화답하며 짐을 맡겼을 거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런 젊은이가 있다면, 고맙다는 말 대신 뺨부터 맞지 않을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종종 들어 본 늙은이란 말을 이제 사용하는 사람은 아예 없다. 따라서 그 반의어에 해당하는 젊은이란 말도 사라졌다. 모두가 늙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대신에 요즘은 대한노인회가 선호하여 선정된 ‘어르신’이란 말을 사용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이건 누구도 피할 수 없이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 늙어가는 시간 속에 모든 인생은 햇살과 비와 바람이 섞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거다. 어떤 이는 느닷없이 불어 닥친 비와 바람을 잘 감당하고는 햇살을 맞아 잘 익어가고 있고, 어떤 이의 인생엔 비와 바람만 가득하여 낡아버리기만 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비와 바람을 피해 햇살만을 쫓다가 색이 바래 닳아버렸다. 

지난달, 춘천문화재단 공론장에서 아는 분을 10년 만에 만났다. 마스크를 쓴 채로 반가움을 표현하려니, 코로나 시국에 하지 말라는 악수를 어느새 하고 있었다. 10년 전 그는 이미 중년의 아저씨였고 결코 미남 축에 드는 얼굴은 아니었다. 말하는 사이사이 아내 사랑이 드러났고 위트가 넘치던 분으로 기억한다. 쉬는 시간 밖으로 나와 마스크를 벗고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염색도 하지 않으시는지 머리는 희끗희끗했고, 얼굴에 주름이 늘었지만 10년 전보다 훨씬 멋진 모습이었다. ‘익어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해주는 온화한 얼굴이었다. 

외모지상주의에 반대하며 얼굴에 관한 얘기를 자제하는 세상이지만, 난 얼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굴은 내면의 창이고, 이는 나이가 들수록 투명해지는 마법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늙는 것을 슬퍼하며 보톡스나 짙은 화장으로 주름을 감추려 애쓰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렇게 억지로 주름을 가린다고 해봤자 젊음을 당해낼 수는 없고, 그런 시술이 주름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내면의 숙성상태까지 드러내 주진 못한다.

‘조금만 지나면 또 한 살을 먹는구나.’ 하며 한숨이 나오는 계절이다. 주름이 느는 것과 나잇살을 보며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고 감추려 애쓰기보다는, 지금의 난 살아온 만큼 잘 익어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르신’이란 말은 그저 늙은이의 대명사로 의미가 변질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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