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무부대 관사 8개 동 리모델링… 춘천문화재단 위탁 내년 3월 본격운영
예술가 자문 장르별 특성 반영 없어… 다른 지역 창작촌 반면교사 삼아야

소양로 4가(중앙로134번길 11) 옛 기무부대 관사가 춘천예술촌 창작공작소로 재탄생했다.

춘천예술촌은 낙후된 원도심 내 유휴지를 문화적 도시공간으로 재생하는 의의를 갖고 있다. 

2019년 계획수립 당시, 춘천예술촌은 상설전시관, 수장고, 문학홀, 창작공간 등을 포함하는 큰 규모였지만 2020년 6월 강원도 투자심사에서 재검토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창작공작소(예술인 창작과 시민문화예술향유)에 집중하는 내용으로 사업 규모가 조정됐다.

춘천예술촌 창작공작소가 준공됐다. 잔디광장 등 조경공사만 남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창작공작소 조성이 진행돼왔다. 그러다 최근 지역 미술계와 시민들이 춘천시립미술관 건립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춘천시는 창작공작소 뒤편에 시립미술관을 조성하여 2025년에 개관하겠다는 구상을 더해 춘천예술촌 조성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시가 밝힌 시립미술관은 2019년에 계획했다가 무산됐던 최초 구상에 포함된 전시관을 이름만 바꾼 것이다. 시는 “해당 부지가 도시계획상 문화복지시설이 들어설 곳이라 빠른 건립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지역 미술계는, “현 부지의 입지조건이 전시 및 수장고, 연구·교육·보존 등 시립미술관의 크고 다양한 역할을 충족하기 어렵다”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 내년 2월 타당성 용역 결과에 따라 다른 곳에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시도 미술인들의 의견을 숙고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선 창작공작소가 먼저 준공된 것이다.

창작공작소 이모저모

창작공작소는 춘천시 공공건축가 8인이 옛 기무부대 관사 8개 동(연면적 909.73㎡)을 각각 1동씩 맡아서 리모델링 설계했다. 

2019년 11월 계획수립 및 타당성 조사 용역이 실시됐고, 2020년 1월에는 주민 및 예술가 간담회와 리모델링 설계용역이 실시됐다. 올해 8월 리모델링 공사가 착공되어 지난 22일 준공검사를 마쳤다. 총사업비는 약 19억 7천여만 원이며 잔디광장과 행사공간 등 조경작업은 내년 2월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6개 동은 작가동으로서 전문예술인들이 입주하여 창작활동을 한다. 1개 동은 시민창작동으로서 시민이 예술가와 함께 작품을 만드는 교육·체험공간이다. 나머지 1개 동은 관리동으로서 커뮤니티·카페·전시실·사무실 등의 기능을 맡게 된다.

향후 창작공작소 운영을 위한 ‘문화시설 설치 및 운영 조례’ 일부개정이 추진되고, 춘천문화재단이 공공위탁을 맡아 내년 1~2월에 입주예술가를 모집하고 3월부터 본격 운영한다.

도시재생으로는 훌륭… 예술장르적 특성 반영되지 않은 건 문제

창작공작소는 효과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서 설계단계부터 예술가 자문을 통해 장르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총, 민예총 그리고 지역의 예술단체 어느 곳도 설계 및 조성과정에 공식 참여하거나 긴밀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탁기관인 춘천문화재단도 2020년 초 설계 용역과정에서 한 차례 설명을 듣기만 했다. 물론 2020년 1월 시청 민방위교육장에서 한차례 열린 간담회에 몇몇 예술인들이 자리했지만, 조성사업을 설명하는 수준이었다.

창작공작소를 함께 둘러본 작가 K 씨는 “어두운 역사의 공간이자 오랫동안 버려진 공터를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만든 의의와 도시재생적 성과는 높게 평가한다. 리모델링도 잘 됐다. 작가들이 들어와 살고 싶을 것 같다. 그런데 이곳에서 작업을 할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일러스트, 공예, 일부 장르의 회화 등 물질성이 크지 않은 장르로 제한될 것 같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창작 및 수장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당초 목적이 그야말로 ‘예술공장’을 지향했다면 노출이 덜하고 비개방적이어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간섭 안 받고 작업할 수 있게 조성했어야 했다. 처음부터 다양한 장르와 매칭을 해서 해당 예술가들이 설계에 참여해서 장르적 니즈가 반영됐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창작촌은 차라리 시외곽에 터를 마련해서 층고가 높은 창고 여러 개를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는 것이 더 낫다. 그런게 예술공장으로 제격이다. 이곳 6개의 작가동은 매우 개방적이다. 예술공장보다는 시민향유공간이나 아트샵이 더 어울린다.”

조각가 H 씨는 “일단 건물의 층고가 낮다. 특히 조각 특성상 야외 작업공간이 필요하고 소음에도 자유로워야 하고, 작업과정에서 유해물질도 많이 발생해서 환풍시설도 중요한데, 각 건물이 가까이 있어서 작업하기 어려울 것 같다. 또 커다란 재료가 드나들기 쉽게 계단이 없고 출입문도 넓어야 한다. 오히려 샌드위치 패널 창고가 작업하기에는 더 좋다. 그런 면에서 작업공간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제한된 작업만 가능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예술가의 입주·창작공간인 작가동 중 한 곳의 실내 모습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에서 시민과 만남이 잦은 한 문화활동가는 “이 땅을 모두 밀어버리고 흔한 건물을 지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 황폐했던 곳인데 개방적이고 세련되게 잘 조성된 것 같다. 물론 예술가들의 참여와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건 아쉽다. 생활예술동호회들의 활동공간이 부족하다. 시민창작동을 한 동에서 두 동으로 늘리고,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상설 판매 공간을 마련하는 등 기능을 조정할 필요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역의 한 문화기획자는 “다른 지역의 젊은 작가들, 부부작가들을 춘천으로 유입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시민대상 교육·체험프로그램 참여를 조건으로 일정 기간 무상으로 머물며 작업하고 그 결과물의 일부를 시에 기부 체납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목적성 명확히 점검하고 다른 지역 창작촌 명암 살펴야

춘천시 문화예술과를 찾아가 지역 문화예술관계자들의 의견을 전했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과는 “어두운 역사의 공간, 버려진 유휴지를 문화예술로 재생했다는 점에 중점을 둔 것으로 이해해달라.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관사의 벽과 지붕 등 건물의 기본 틀을 살리고 리모델링하는 것이었고, 어느 건물에 어떤 예술가가 입주하게 될지 예단할 수 없기에, 예술가의 특성을 세세히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의견을 잘 듣고 문화재단과 논의 해서 운영과정에 잘 반영하겠다”라고 말했다.

곧 위탁을 맡아 운영을 책임질 춘천문화재단의 김희정 사무처장은 “조성과정에 예술가들의 니즈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문화예술의 도시 춘천에 예술가와 시민을 위한 창작공간이 하나 더 늘었다는 점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창작공작소에 대한 공간분석을 면밀하게 진행하고 목적성에 맞는 입주예술가 모집 방안과 전반적인 운영 가이드라인을 잘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창작공작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문화적 도시재생으로는 잘한 행정이지만, 디테일은 아쉽다’라고 압축할 수 있다. 문화예술의 도시를 지향하는 춘천, 갈수록 예술경영·행정의 중요성이 늘고 있다. 또 내년이면 법정문화도시 사업 2년째이어서 시민참여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수요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창원의 창동예술촌, 인천 아트플랫폼 등 여러 예술촌이 큰 기대를 걸고 문을 열었지만 크고 작은 문제를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창작지원과 지역 활성화 등 정체성 혼선, 장르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공간과 입주작가들의 상주 시간대, 마케팅 부재, 지역 예술인들의 상대적 박탈감, 성과주의 사업과 이벤트성 행사 등이다. 춘천시와 춘천문화재단이 반면교사로 삼을 곳은 많다. 창작공작소의 문을 활짝 열기 전 다시 한번 목적성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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