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집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의 니즈를 담는 것 아닐까?

보통의 생활과 업무가 벌어지는 곳이 아니라 예술창작 등 특별한 목적성을 지닌 건물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행정이 건물을 지을 때는 그런 과정이 빈번하게 생략된다.

최근 준공된 창작공작소도 그렇다. 예술가의 자문과 창작과정의 장르적 특징이 반영되지 않았다. 사실 여러 지자체가 도시재생 수단으로 조성한 많은 예술촌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다. 예술가의 니즈가 반영되지 않았으니 입주 작가의 장르도 제한적이고, 입주 후에 공간을 다시 손보는 일이 빈번하다. 예술가의 창작이 도시재생의 후 순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지역에 더 중요하냐고 따지기 어렵지만, 많은 예술창작촌이 이렇게 첫 단추를 잘못 끼고 쇠락하기 시작했다.

늘 행정은 상의 없이 뭔가를 짓고서 툭 내민다.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것은 반갑지만, 예술가도 위탁운영을 맡은 기관도 마냥 기쁘지는 않다. 알다시피 춘천시는 2019년부터 총괄건축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는 과거 공공건축이 “지역적 맥락과 무관하게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급하게 추진되고, 특색 없이 획일적이거나 과도한 디자인 등 이용자의 불편을 야기했다”고 진단하며, 공사 전담부서인 공공시설과를 신설하고, 총괄건축가제도와 공공건축가를 도입했다. 창작공작소도 공공건축가가 참여했다.

총괄건축가가 춘천 전 지역의 공간 조성에 대한 설계와 자문을 맡는다면 공공건축가는 총괄건축가의 감독 아래 공공건축물에 대한 기획·설계·관리 업무를 맡는다. 현재 공공사격장을 필두로 퇴계동 행정복지센터, 지역 먹거리 직매장, 치매전담요양원, 춘천ICT벤처센터 등 공공건축물에 총괄건축가 제도를 적용했다. 

어두운 역사가 깃들어 있는 유휴지 군 관사가 도시재생과 공공성에 초점을 두고 세금 낭비 없이 번듯하게 리모델링됐으니 제도의 목적을 다한 건 맞다. 하지만 미시적 니즈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허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문화도시 춘천, 갈수록 예술행정, 예술경영의 책무가 늘고 있다. 이참에 총괄예술기획자제도(가칭)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문화예술은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과 연속성이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현장에서는 “문화예술 담당자들이 손발이 맞고 함께 일할 만하면 보직이 바뀌고 타 부서로 가더라”라는 하소연을 자주 한다. 

총괄예술기획자는 예술 각 분야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으로서, 예술가들을 자주 만나 소통하고, 다양한 축제와 예술현장에서 예술가와 시민과 어울리며 그들의 니즈를 면밀히 체크하는 역할을 맡는다. 창작에 몰두해야 할 예술가들을 대신해서 그렇게 모인 니즈를 춘천시와 시의회, 문화재단에 전달하고 또 그 기관들을 잇는 역할을 한다. 또 시의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긴 호흡으로 함께 이끌어가며, 각종 회의와 포럼에도 참석하고, 시립미술관·창작종합지원센터 등 문화예술 공간 조성에도 적극 참여해서 제도와 행정이 놓치는 것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소속과 법적근거 등 디테일을 다듬어 관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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