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장)

서원이란

조선 시대 지방에는 성현을 기리는 향사(享祀:제사)와 후진 양성의 교육 기능을 지닌 향교와 서원이 있었다. 춘천에는 춘천향교와 문암서원, 도포서원, 구봉서원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문암서원은 춘천 유일의 사액(賜額) 서원이다. 사액이란 임금이 서원의 편액(扁額)을 내려주어서 국가가 그 자격(資格)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춘천 문암서원과 봉화 문암서원 

경북 봉화에도 문암서원이 있는데, 퇴계 이황을 배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춘천 문암서원과 동일하다. 춘천 문암서원은 1610년 시작된 반면, 봉화 문암서원은 1616년에 시작되었다. 춘천 문암서원에는 이황(李滉)을 비롯하여 김주(金澍) 이정형(李廷馨) 조경(趙絅)이 배향되었고, 봉화 문암서원에는 이황(李滉)과 조목(趙穆)이 모셔져 있다. 춘천 문암서원은 1648년(인조26)에 사액 되었고, 봉화 문암서원은 1694년에 사액 되었다. 두 서원 모두 1871년 서원철폐령 이후 모두 훼철되고 복원하지 못하였다.

춘천 최초이자 유일의 사액 서원 문암서원

문암서원은 춘천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세워졌고 성현에 대한 제향과 후진 양성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문암서원에 모셔진 대표적 인물은 퇴계 이황이다. 퇴계의 어머니가 춘천 박씨인 까닭에 주 배향 인물로 모시게 되었지만, 그 중요한 이유는 퇴계가 한국 최고의 유학자이기 때문이다.

문암서원은 1610년 당시 춘천 유생들의 간청을 받아들인 강원도 관찰사였던 신식(申湜)에 의해 주창되고 당시 춘천부사였던 유희담과 의논하여 노비 약간 명을 몰입(沒入)하고 구속(口屬)을 전복(典僕)으로 삼아서 서원을 짓게 되었다. 이후 1612년 신식은 춘천으로 부임하여 고을 사람 안숭양(安崇讓) 이주(李胄) 등과 춘천댐 근처에 서원 터를 정하고, 당시 서원의 형태와는 다르게 주자가 권하는 방식으로 남북 5가(架) 동서 5칸 규모의 건물로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615년에 이르러 문암서원을 완공하기에 이른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문암서원 방문

1823년 다산 정약용은 조카의 혼사를 위해 춘천을 방문했는데, 『산행일기』에 문암서원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나는 두 명의 이씨와 함께 10리 거리에 있는 수운담(水雲潭)을 지난 다음 5리를 더 가서 보통점(普通店)에 이르렀는데, 학연(學淵)과 윤유청(尹唯靑)이 도정(陶井)으로부터 와서 만났다. 서북쪽의 여러 산세를 바라보니 울창하게 두루 얽혀 있고, 그 푸른 아지랑이 산 그림자에다가 향풍을 일으키는 옷자락은 표표히 진세(塵世)를 벗어난 기분이었다. 강을 낀 등로(磴路)를 보통천(普通遷)이라 부르는데 그리 험하지는 않았다. 10리를 가서 문암서원(文巖書院)에 이르러 유숙하였는데, 서원은 깊은 산중에 있어 평생에 서울 양반을 보지 못하는 터라 자못 분주히 접대하며 존경하는 기색이 있었다. 두 재실에 불을 넣어 온돌이 몹시 따스하였다.

 이어 다음날 문암서원에 모셔져 있는 인물에 아들과 함께 예알(禮謁)하였다. 다산은 문암서원에 자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깊숙한 산속에 공부하는 곳     嶽麓藏修地

푸른 강물 앞을 돌아 흐르며     滄江繞案回

재실은 함께 공부할 만한데     齋堪書共讀

선비는 술 때문에 자주 오네     儒以酒頻來

풀은 우거져 돌층계를 덮었으며     碧草深堦石

붉은 창문은 회색 부뚜막에 희미하고 紅欞隱竈灰

무슨 연유로 산중 스승이 되었는고  何由作山長

은둔하여 영재를 기르기 위해서라네 遯跡育英才

 문암서원은 세워질 당시 산속으로 느껴질 정도의 오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산의 눈에 들어온 문암서원은 오로지 공부하는 장소였고, 이곳에 있는 서원의 스승도 영재를 기르기 위함이라고 하며, 문암서원의 강학(講學:교육)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문암서원 옆에는 영귀정(또는 사군정)이란 정자가 있었고, 앞으로는 문암(文巖)과 열두 개의 담(潭)이 있었다. 이곳에서 선비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지극한 멋을 누렸다. 

문암서원은 복원되어야

성현에 대한 존숭과 자연에 대한 감상 그리고 교육 장소였던 문암서원이 지금 그 자취를 엿볼 수 없다. 춘천 유일의 사액 서원이었던 문암서원이 복원되어서, 춘천 유교 문화가 융성해지기를 새해에 기대해 본다.

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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