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시인)

남편이 죽은 지 10년이 넘었다. 외롭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꼭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남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니, 이미 외로움에 익숙해진 탓이겠지. 남편이 죽고 얼마 동안은 불쑥불쑥 밀려오는 그에 대한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들이 모든 생활 속에서 찾아왔다. 가장 어이없는 건 쓰레기를 내다 버릴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나는 거였다. 첫째를 낳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부턴 대부분의 집안일은 내가 했지만, 쓰레기 버리는 일만큼은 늘 남편이 맡아 해주었다. 그가 없으니 이제 이런 것까지 내가 해야 하는구나, 그리움도 참 이기적이다.-

심현서 작가의 소설집 《사랑한다는 착각, 이별의 알리바이》에 수록된 <사랑할 수 없는>이다.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의 영원한 화두인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다뤘다. 문장이 매끄럽고 가독성이 높다. 작가의 소설은 읽다 보면 순간순간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첫 번째 이야기 ‘불편한 연애’에서 나(유진)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 가장이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우리. 남편은 남들이 평생동안 나눠줄 사랑을 10년 동안 다 쏟아 부어준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남편이 죽은 지 10년이 지나 연애 좀 하라는 딸의 말이 독설에 가까운 일장 훈계로 딸을 혼낸 시어머니에 대한 오기로 비슷한 처지의 재환과 뜨뜻미지근한 연애를 하고 있다. 작가는 연인 비슷한 흉내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이웃의 이야기인 듯하다. 근처에 사는 아이들 고모가 찾아오고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기 전까진. 독자는 상상한다. 들켰구나! 재환이 알고 보니 고모의 친구이거나 고모의 첫사랑이거나……. 틀렸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남편을 닮은 사진이 실린 사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다른 이름을 가진. 독자는 여기서부터 작가가 풀어갈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끌려 들어간다. 재환과의 불편한 연애는 정리되고 남편을 닮은 남자를 찾아가지만, 그는 남편이 아니다. 두 번째 이야기 ‘남편이 살아있다’에서 나(기태)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친구들의 삶을 뒤바꿔놓은 장본인이다. 죽은 친구(경호)를 살리고, 살아있는 친구(진영, 유진의 남편)를 죽였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소설 공간에선 가능하다. 순진한 독자가 쳐놓은 마지노선을 시원하게 넘어버리는 작가의 글발이 부러울 따름. 작가가 끝까지 알려주지 않은, 살아있지만 완전히 죽은 남편의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를 주문하고 싶게 만든다.

뜬금없이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이 떠오른 건 세 번째 이야기에 대한 강렬한 욕구 때문인지도. 그 옛날 어느 아침, 나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마루를 닦는다. 즐거운 상상의 시간이다. 새 삶을 얻은 남편 진영은 완전한 경호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여자 주인공이자 뇌과학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난다. 남자 주인공의 고뇌를 이해한 그녀는 기억회로 조작 프로그램으로 그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놓는다. 진영은 완전한 경호가 되고 평생동안 나눠줄 사랑을 지금의 아내에게 10년 동안 퍼부어준다. 아이가 태어나고 집안일은 대부분 아내가 하지만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일만큼은 진영이 맡아……. 하하, 여기까지. 작가의 의도를 어렴풋이 알겠다. 어쨌든 삼십 년 사랑의 계절을 지나온 우리 아닌가, 당신은 나의 어떤 모습을 그리워할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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