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현 기자

오래전 엄정화 주연의 ‘미쓰 와이프’라는 영화가 있었다. 돈과 성공만을 위해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잘 나가던 변호사인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 도입에서 주인공은 대기업 회장 아들의 성폭행 사건을 변호한다. 피해자 측의 “죽일 놈, 꼭 감옥 보내겠다”는 분노에 주인공은 가볍게 받아치며 “가해자는 재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 아들이다. 해외근무 1, 2년 하고, 국내 복귀하면 이 사건 기억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하지만 피해자는 일자리도 구하고, 결혼도 해야 할 텐데 이 사건 커지면 누가 손해겠냐”라며 협박 아닌 협박으로 합의를 이끌어낸다.

영화 후반부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주인공의 딸이 비슷한 일을 겪어 자신이 했던 멘트를 가해자 변호사에게서 듣게 되자,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했던 건지 깨닫게 된다. 딸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잔뜩 주눅 든 얼굴로 말하자, 주인공은 눈물을 닦고 가해자와 가해자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해자가 해외 유학을 간다 해도, 세계 어느 나라 공항에 발을 딛든, 모든 사람들이 강간미수범으로 알아보게 해주겠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절대로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해주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물론 판타지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영화를 통해서나마 잠깐의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은 같은 학교 선배로부터 16~17살에 성폭행을 당하고, 분리되지 않은 채 학교에 다녀야 했다. 견디기 어려워 학폭위에 신고해 가해자에게 강제 전학 조치가 내려졌지만, 가해자는 이를 불복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피해자는 가해자의 가족, 친구들로부터 2차, 3차 가해를 당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영화 ‘미쓰 와이프’의 엄정화처럼 딸을 지키기 위해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로 이 사실을 알리고, 고소도 했다. 1심에 징역 4년형이 떨어졌다.

“가해자가 곧 감옥에서 형을 살고 나온대…. 내 삶을 망가뜨린 가해자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라며 괴로워했던 어린 딸은 말도 안 되게 낮은 형량에 2심을 진행하던 도중 “더는 고통 받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압박을 견디기 어려워 결국 가족들 곁을 떠나고 말았다.

재판은 3심까지 갔다가 파기 환송되어 최종 7년형으로 판결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죽음이 성폭행 사건과 상관없다고 봤고, 가해자는 그마저도 많다며 반성 없는 태도로 재상고를 요청해놓은 상태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다. 일기장에 성폭행 사건으로 인한 괴로움이 가득한 채 견딜 수 없어 죽음에 이른 상황이 사건과 상관없다고 판단한 춘천재판부 형사2부 견종철 부장판사와 성폭행을 하고, 피해자가 자살한 상황에서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형량을 낮추기 위해 애쓰는 이제는 성인이 됐을 가해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힘든 시간, 감히 어떤 표현으로도 담아내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을 피해자를 잊지 않겠다. 또 다른 당신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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