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안의 파시즘 2.0 / 임지현 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소위 파시즘과 싸워 왔거나 싸우고 있다고 자처하는 대안 세력의 사고와 운동 방식조차도 이러한 파시즘을 떠받치는 한국사회 고유의 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만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는 양 착각하는 일부 좌파들의 도덕적 폭력, 상대에게 이러저러한 딱지를 붙임으로써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려는 권력 지향적 글쓰기, ‘현실 정치 공간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라는 사이버 공간 내에서 보이는 언어와 논리적 폭력의 상승 현상 등은 일상적 파시즘이 우리 사회 저변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잘 보여 준다. - 1999년 《당대비평》 가을호 - ‘우리안의 파시즘’] 

1999년 가을을 기억한다. 광장서적을 오픈했던 해였고, 큰아이가 태어났던 해였다. 생면부지 춘천은 낯설었고, 책은 또 왜 그렇게 무거웠던지…. 고단한 일상이었지만 책에 파묻혀 지내며,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에 잔뜩 들떠있던 그런 해였다. 지난주  《우리안의 파시즘 2.0》이 새로이 출간되었을 때, 낡디 낡은 20여 년 전 책을 다시 펼쳐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변한 게 없자나’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보수세력에 포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부동산 가격 폭등을 낳은 정책 실패와 무지를 자본의 음모로 돌리는 논리, 당내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청년세대와 비정규직 노동자, 페미니즘과 친환경 생태정치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억압의 정치를 진보와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586 정치의 문법이 당시 지식인 사회를 강타했던 스물 몇 해 전의 지형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류세력의 대처방식은 같다. “내부총질 하지 말란 말야!”

이 책은 능력주의, 기득권, 정당정치, 젠더와 생태, 인종주의, 주목경제, 종교, 언어, 예술 등 총 7개의 주제로 우리의 일상을 규율하는 미시권력의 문제를 짚고 법과 제도, 구조와 일상을 전면적으로 민주화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모색한다. 586 세대의 지식인 네트워크와 노동조합의 전투적 조합주의, 연공임금제 고수 전략이 586세대와 청년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주요 요인임을 밝혀내는 이철승의 ‘세대-연공-인구 착종이 낳은 기득권’과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는 시민들이 주도한 국민주권 민주주의로 인해 정치도, 사회도, 개인도 길을 잃었다고 개탄하는 정치학자 박상훈의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정치’, 더 이상 지구와 자본주의는 동반자가 아님을 깨닫고 보살핌의 윤리, 생활협동조합운동, 로컬푸드, 인구분산 등 완전한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사회학자 정희진의 ‘식민지 남성성과 추격발전주의’는 개인적으로 깊은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이 서평이 실리는 다음 주가 되면 앞으로 5년을 책임질 새로운 정치 세력이 결정된다. 빨간당이 된다고 대한민국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며, 파란당이 된다 한들 없는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질 것 같진 않다. 정희진의 말대로 ‘타자 배제 없는 사유로서 민주주의자’가 승리하는 시민총회가 내 생애에 과연 가능하긴 할까?

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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