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최근 문화분야 취재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른바 ‘번아웃(Burnout)’을 겪었거나 겪는 중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로 인해 오랫동안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핸드메이드 공예가로 변신하거나, 소소한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번아웃은 일종의 정신적 탈진이다.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다 불타서 없어진다고 해서 소진(消盡), 연소(燃燒), 탈진(脫盡)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과도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과중한 업무, 노력에 비해 적은 보상, 직장에서의 불공정함,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충돌하는 업무 등을 꼽았다. 이러한 이유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피로를 느껴 열정을 잃었다고 말했다.

특히 2030세대의 스트레스 지수는 전 세대 중 가장 높다. 서울시가 발표한 세대별 스트레스 지수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스트레스 지수가 각각 37.9%와 36%로 1~2위를 차지했다. 최근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입사 1년 차 퇴사율이 37.5%, 2년 차 퇴사율이 27%로 신입사원 절반이 2년 이내 퇴사를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표를 던진 이유로는 업무 의욕 저하와 기업 내 갈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코로나 블루’까지 겹쳐 더욱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번아웃 시대를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의 저자 안주연 교수는 일상에서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할 것, 단호한 태도를 지닐 것,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결정적 요인을 피할 것 등을 강조한다. 하지만 번아웃의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에 있음을 강조하며 개인의 노력보다 실제로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세상에는 일이 너무나 많으며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노동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대가(代價)로서의 노동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호기심과 의욕이 발동할 수 있는 게으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비로소 창의적인 생각과 활력이 움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시민들 가운데 번아웃을 계기로 새로운 삶에 뛰어든 사람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은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번아웃을 감내하고 버티며 살아간다. “배가 불렀구나” 또는 “요즘 세상에 직업이 있고 제때 월급 받는 게 얼마나 행운이냐?”라는 핀잔이 두려워 가족에게는 말도 못 꺼내고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거나 용기 없음을 자책하는 이도 있었다. 그나마 잠시 숨을 쉬고 싶어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에 기웃거리는 그에게 결코 당신 탓이 아니라고 작은 위로를 건넸다. 

멀지 않아 일상회복이 시작될 것이다. 코로나19, 인구절벽, 청년유출 등으로 지역의 활력이 줄고 있다. 우선순위를 다툴 일이 많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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