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기자

우연히 만난 지인이 참 안타까운 일을 경험했다며 목격담을 들려줬다. 여행을 가기 위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표를 들고는 버스에 타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알고 보니 두시 반 버스가 매진이라서 빈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탑승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 출발시간이 됐을 무렵 한 자리가 남아 기다리시던 할머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지막 자리를 예매했던 사람이 정확히 출발시간에 맞춰서 도착했고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려 다음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렇다면 할머니가 두시 반 버스를 타기 위해서 얼마나 일찍 와서 예매해야 할까? 30분? 한 시간?

지난해 9월에는 한국소비자원이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없는 70세 이상 고령 이용자 5명을 대상으로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이용 모습을 관찰했는데, 대상자 5명 모두 주문을 완료하지 못했다. 

산업화시대와 정보화시대를 지나 지금은 디지털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빠르게 시대가 변했던 적이 있었을까? 기자의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산업화시대와 정보화시대 그리고 디지털시대까지 급변하는 시대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세대이다. 그나마 부모님 세대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자녀들에게 물어보고 직접 검색도 해가며 새로운 시대에 뒤늦게나마 따라갈 수 있을 테니. 

문제는 그 위 세대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학습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만 보더라도 두시 반 버스를 타기 위해 할머니는 출발시간보다 훨씬 일찍 길을 나섰을 것이다. 그렇게 일찍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현장 발권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모든 좌석이 모바일 예매로 매진되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모바일 단말기를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간단하고 쉽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누군가는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스마트폰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키오스크 사례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는 비대면 시대에 발맞춰 무인 시스템과 자동화 서비스를 편리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키오스크의 존재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끼고 발길을 돌리게 하는 수문장일 수 있다.

이러한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버스표 예매 시 좌석의 20%는 현장 발권으로만 구매가 가능하게 하는 운송사도 있다. 그리고 디지털 배움터를 통한 무인 단말기·디지털기기 교육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런 양극화가 해결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편의의 양극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극대화될지도 모른다. 다만 이 글을 쓰며 문뜩 나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스마트폰에 익숙지 않은 부모님이 사용방법을 물어볼 때 너무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며 쉽게 짜증 내지는 않았는지, 수문장이 지키고 있는 점포에서 민망한 일을 당하시지는 않으실지.

보름 후면 가정의 달이 찾아온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폐지되고 한껏 추웠던 날씨도 따스한 봄바람으로 녹아내리는 계절, 고향에 계실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로 따듯한 마음을 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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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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