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사람 발자국 소리 알아듣고

알아들은 만큼 큰단다,

씨 뿌렸다 될 일 아니고

밭에 자주 다녀야 된다는 어머님 말씀인데,

오리걸음 호미질 끝내고 뒤돌아보면

벌써 밭고랑 뒤덮으며 쫓아오는 풀들,

온 사방은 풀들로 가득한데, 얘네들은

우리가 먹을려고 심어놓은 잎사귀들만

골라서 뜯어먹고 간다, 널린 발자국들.

쟁기질이 무색하다.

최계선 시집 <동물시편>, 아이북 2017 

최계선의 고라니는 참 재미난 시다. 나는 고라니를 보면서 대칭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잡초도 세상의 쓸모가 있어 핀 것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쓸모없다고 거두어 낸다. 자본주의가 시간을 분절하기 이전 세상은 어느 정도 대칭성이 지켜졌다고 본다. 인간과 다른 생물 간의 대칭성을 통해 균형을 이루어왔다. 산업자본주의의 기계화 수탈 이후 그 대칭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우리는 곡식을 키우기 위해, 호미질로 잡초를 제거하지만 잡초의 생명력은 인간이 가꿔내는 곡식에 비할 바 아니다. 거기에 인간이 키운 곡식만을 고라니는 잡초 제거하듯 뜯어먹는다. 고라니나 인간이나 같은 식성이다. 그러니 같이 살아야지 별수 있나. 고라니의 균형 감각이 대단하다. 이것은 시인의 균형 감각이기도 하겠다.

한승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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