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다는 것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Brainy Quote에서 스마트폰으로 보내오는 ‘오늘의 어록’. 천하의 지혜로운 자들이 한 말이라 아침마다 호된 죽비 한 방씩을 맞는 셈이다. 오늘 아침에 전해진 마하트마 간디의 말씀을 오래 들여다보고, 곱씹고, 마음 깊은 곳에 고이 간직했다.
“이 세상이 바뀌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바로 그 변화여야만 한다.
검찰공화국으로 가려는가. 검찰은 비리와 부정을 낱낱이 들추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지만, 이해관계에 얽히면 철저히 감추어주는 기관이 될 수도 있다는 것 - 유권자들은 이걸 알고도 그렇게 되게 하는 건지, 모르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맞게 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냥, 올해는 아무 말 않고 지나가려 했는데, 원고 마무리하다가 들어간 포털에서 기사를 봐버렸다. 하는 수 없다. 여러 해 전, 사무쳐서 그렸던 두 장을 건다.
꽃과 글
일요일 늦잠도 젊을 때 일인가, 아침 일찍 눈 떠지는 건 평일 휴일을 가리지 않는다. 오늘은 유난히 정신이 맑아 기이했는데, 우울 비슷한 게 가슴 한켠을 무겁게 짓눌러 균형을 맞춘다. 세수하고 찬물 한 잔 들이킨 뒤 서실로 들어가, 4언 4구 하나를 썼다.
花開不擇(화개불택)
只到得麗(지도득려)
文頌能讀(문송능독)
唯達解味(유달해미)
꽃은 누구에게나 피어나지만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자에게만 닿고
글은 누구에게나 읽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자에게만 이른다
*“귀가 순해져 어떤 말을 들어도 사심없이 헤아려 그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에 들고 몇 년을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말마다 흔들리고 뜻을 헤아리는 데도 주관에 심히 치우친다. 꽃은 여전히 내게만 활짝 피어 향기를 뿜고, 글은 내 이해의 범주 안에서 그 전부를 펼쳐놓는다는 식의 독선과 아집이 젊을 때의 그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 듯하다. 그나마 이 정황을 알고나 있으니 다행이다 싶을 만큼, 용렬과 열패 사이를 분주히 오갈 뿐이다.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누구에게나 피는 꽃, 누구에게나 읽히는 글의 보편과 일반에서 판단을 멈추고 그윽이 바라볼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