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농민운동을 하셨던 여류 이병철 선배님의 조시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춘천 출신 사회운동가 정재돈님이 6월 6일 별세했습니다. 온오프라인에 올라온 추모의 글을 전재합니다. -편집자 주
사랑하는 아우야.
창밖을 보렴
겨우내 빈가지였던 그 나무
봄 들자 가지 휘도록 꽃 피우더니
이 유월, 피었던 꽃 자취 없이 사라진 자리 진초록 잎새들만 눈 시리구나
무성한 저 잎새들
가을 저물면 낙엽 되어 흩어지고
다시 빈가지로 시린 하늘을 이겠구나
내 사랑하는 아우, 바우야
왔으니 가야 하는 그 길에서
먼저 핀 꽃 먼저 지듯이
너는 이번 생에서 남 앞서 꽃피어 봄 열었다가
이제 형보다 앞서 낙엽 지듯 떠나는구나
존재한 것은 다시 사라질 수 없다고 했으니
이생에서 꽃피운 곧은 네 자태와 맑은 그 향기
여기 이 땅과 하늘,
네가 사랑하고 너를 사랑한 이들 가슴에 봄을 기다리는 씨앗처럼
밤 깊을수록 영롱한 별처럼 그리 살아있을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우, 바우야
마지막 병상
육신의 기력이 다하고
참아낼 수 없는 그 아픔에 신음하면서도
너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했다
네 눈빛과 눈물로 전하는 간곡한 그 마음
아우야, 정말로 고마웠던 나였고
네가 사랑했던 우리였다
네가 있어,
네 마음과 기도와 정성으로 맺어준 그 인연이 있어
지금 이리 우리가 있고
여기 벗과 동지들이 함께 있다
사랑하는 아우야
가쁜 숨길 속 고통이 네 심신을 헤집을 때에도
너는 깨어있는 혼으로 이승과의 작별을,
이번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앞서간 그 길,
이생에서 감당해야 할 네 몫 그리 마무리했으니
스스로 짊어졌던 짐 이젠 모두 내려놓고
밝고 가볍게 훨훨 날아올라라
날아올라 한 줄기 상큼한 바람 되고
메마른 땅 적시는 단비 되고
언 눈 녹이는 따스한 햇살 되어
네가 한 생을 바쳐 사랑했던
이 땅의 농민들에게
어깨 걸고 목쉰 소리로 민주와 정의를 함께 외치던 동지들에게
너와 함께 했던 인연에 감사하는 이들에게
다시 오기를
이 땅에 그렇게 환하게 다시 꽃 피어나기를
2022년 6월 8일
이번 생에서 너와 함께여서 행복했던 여류 삼가 모심
[정재돈님이 걸어온 길]
춘천 출신(1955년 생), 강원대 국어교육과 중퇴, 명예졸업
민청학련으로 구속, ‘오원춘 사건’ 관련 유인물 배포 혐의로 구속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총무, 한국가톨릭농민회 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