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IMF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은 돈 벌러 다른 지역으로 가시고, 몇 년간 형과 둘이 살았다. 형이 대학을 가고 난 후에는 얼마간 혼자 살았다. 마음 둘 곳 없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교회였다. 교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외로움을 이겨냈다. 신앙이 깊어가면서 신학교 진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돈 벌러 서울로 가셨던 어머니가 방을 마련해 나를 불렀다.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이과에서 문과로 옮겼고, 집과 멀지 않은 신학교에 들어갔다.

모태신앙이었고 기독교 중에서도 꽤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한번은 어렸을 때 교회 어른들 따라 버스터미널에서 가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친 적이 있다. 이해되지 않는 신앙의 질문들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 다녔던 당시의 교회 안에서는 질문하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로 여겨졌다. 청소년기에 다녔던 교회는 좀 나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비기독교인들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고 불쌍하게 여기는 위선적인 모습이 있었다.

그릇된 신앙관으로 세워온 내 안의 위선은 신학교에서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누구인지, 구원이란 무엇인지와 같은 근본적인 신앙의 질문을 던지면서 교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다. 사회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갈릴리 예수님이 오늘 이 땅에 오신다면 어디로 향하실까?’ 도서관 한쪽에 놓인 한 동아리 소식지의 글귀가 마음에 박혔다. 빈민 현장을 다니며 인권 활동을 벌이는 사회운동 동아리에 가입했다. 가난한 이들을 죄인 취급하며 차별하는 세상에 피켓과 촛불을 들었다. 비리로 얼룩진 교단에 예속되어가는 학교를 바꾸고 싶어 마음이 맞는 신학생 동료들과 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위선적이고 폭력적인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양심 있는 신앙인들을 만났다. 교단 권력에 의해 쫓겨난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 성도들은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나를 전도사로 받아주었다. 주일 오후 성도들은 광장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전을 벌였다. 인권탄압을 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각국 정부에 편지를 썼고, 지역에서는 작은도서관 운동을 하며 아동 및 청소년의 인권과 교육에 힘썼다. 

작년 가을에 춘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으로 제1회 춘천퀴어문화축제를 치렀다. 춘천의 많은 교회가 우리의 활동을 반대했다. 반대의 목소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다고 속상하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다. 축제 맞은편에서 반대행사를 하는 분들은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이 신앙인임을 전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서 성 소수자는 피조물로 인정하지 않는 모순, 차별을 금해야 할 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 엄청난 모순을 대면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춘천에 처음 이사 왔을 때 교회가 정말 많아 깜짝 놀랐다. 이 수많은 교회들은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존재를 차별하지 않는 교회, 질문을 해도 괜찮은 교회, 춘천 시민에게 힘이 되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춘천에 와 마음 둘 곳 없었던 나도 최근 내게 힘이 되는 교회를 만났다. 알고 보니 작년 퀴어문화축제 때 신자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올해 축제는 더 힘차게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효성(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키워드
#IMF #교회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