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철성 ((사)강원평화경제연구소장)

6.1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강원도 선거결과는 진보정치의 대참패였다. 도지사를 비롯한 18개 기초단체장 선거구 15곳에서 국민의 힘 후보가, 도의원의 경우 무려 90%가량이 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어쩌면 이번 선거결과는 지난 총선 때부터 예정되었는지 모른다. 2년 전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전국에서 170여 석을 휩쓸었지만, 강원도민들은 원주와 춘천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선거구에서 야당을 선택했다. 또한 지난 3월 치른 대선에서는 도내 18개 시, 군에서 모두 현 대통령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에 즈음해서도 진보진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공천 초기부터 여전히 ‘사천(私薦)’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른바 ‘이광재 바람’에 기댄 것 외는 참신한 인물도, 반성과 평가에 기반한 어떠한 미래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기우제 정치’에 기댄 강원도 진보정치는 무기력했다. 

하지만 찌는 무더위 속에 ‘연꽃’이 핀다고, 짙은 혼탁 속에서도 진보의 미래에 답하는 소중한 결과가 춘천과 원주에서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춘천시 ‘석사동’ 정의당 ‘윤민섭 의원’과 원주시 ‘마선거구’의 더불어 민주당 ‘홍기상 의원’의 당선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40대 기초의원’ 당선자이며 옛 ‘민주노동당’ 출신이며 둘 다 ‘현장 주민활동가’라는 점이다.

윤민섭 의원은 강원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윤의원은 여느 학생운동 출신자들과는 다르게 졸업 후, 바로 민주노동당 강원도당에서 일하며 진보정당 운동을 익혔고, 주민 속으로 들어가 주민운동을 펼쳤다. 석사동 주민자치회, 석사동 새마을회, 방범대부터 동대표 ‘씨름 선수’까지 동네 일이라면 ‘마을 잔치 설거지’부터 ‘김장 담그기’까지 달려가는, 40대 그야말로 생기 넘치는 ‘활어 정치인’이다. 우리 지역에서 붐이 일었던 아파트 경비노동자 ‘경비실 에어컨 달아주기 운동’을 가장 먼저 펼쳤던 이도 바로 윤의원이다. 언제나 ‘노란 조끼’가 있는 곳에 그가 있었다.

홍기상 의원의 삶은 굴곡지다. 지금은 원주시 ‘홍반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는 한때 자타가 공인하는 ‘노동운동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원주 문막의 만도기계에 입사하였지만, 그가 속해있던 공장은 IMF사태 이후 해외기업에 매각되었다. 당시 노조 지부장을 맡으면서 해외 투기자본에 맞서 단식, 농성, 파업 등 안 해본 것이 없었지만 결국 회사는 파산했고 노조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도 그때, 검게 그을린 얼굴에 큰 눈에 뼈대만 앙상했던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진보를 향한 열정으로 다시 마을로, 동네로 뛰어들었다. 아파트 ‘동대표’를 시작으로 ‘행구동주민자치위원장’으로 마을 누볐고, 동네 일이라면 어디고 달려가 어느새 ‘홍반장’이 되어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그의 선거운동은 남달랐다. 남들은 확성기를 틀고, 명함 돌리기에 골몰했지만, 그는 마을의 골목 곳곳을 다니며 쌓인 쓰레기더미를 어떻게 처리할지, 후미진 골목길을 어떻게 정비할지 민원 현장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SNS에 현장 모습을 올리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주민과 소통했다.

2022년, 누구나 진보의 미래를 걱정한다. 참패하고도 이전투구에 골몰하고, 자족적 선거 평가에, 그 나물에 그 밥인 지역의 진보정당들의 퇴행적 모습을 보며, 자조하거나 한숨을 내 쉰다. 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언어로 진보 정치를 개척해 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도 여기까지 오는데 우여곡절의 20여 년의 세월이 있었다. 이제 그들은 우리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진보의 길은 ‘잘 선 줄’에 있는 것도 아니며, 무리 지어 다니며 SNS 평판에 골몰하는 ‘패거리 진보’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었던 그곳에 있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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