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태 (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새 교육감이 당선되고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과 사업이 많습니다. 그중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일이 있습니다. 교육감 선거 과정 중에서도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던 “학력” 향상을 위한 도 단위 학업성취도평가입니다.

얼핏 보면 ‘학력(學力)’이라는 말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학력이 올라갔다 또는 떨어졌다면서 학부모님들과 시민들도 많이 듣고 사용하는 말입니다. 학력의 사전적 정의는 ‘교육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나 기술 따위의 능력’입니다.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하고 제대로 정립되었어야 하는 이 개념이 왜 이렇게 교육전문가를 자임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논쟁거리가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갈수록 ‘배움’이라는 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거듭나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배우고 익힌 지식과 배우고자 하는 자세, 배운 것을 바탕으로 현실에 적용하고 창조하는 일 모두 소중한 ‘학력’입니다.

이 배움의 시작과 끝에 평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사는 학생이 얼마나 잘 배우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진지하게 평가를 실시하고 학생은 더 잘 배우기 위해서 평가에 적극적으로 임합니다. 교사는 평가를 통해 내가 얼마나 잘 가르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 학생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를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평가를 통해 교사와 학생은 소리 없이 대화하고 때로는 상대방의 깊은 생각을 읽어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참다운 배움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 바로 평가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가는 가르치고 배운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물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과 학과를 가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하느라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불가피하게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전국에서 출제하는 동일한 내용의 평가를 몇 차례씩 치러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초중고 교육 전체가 이처럼 소중하고 의미 있는 평가를 행정기관의 주도로 일제히 치를 수 없습니다. 한날한시에 치러 내야 하는 시험을 위해 교육과정은 빠르게 갈 수도 천천히 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교과 내용의 심층적 이해를 돕기 위한 체험학습을 한다거나 수행평가를 하는 일도 결국 교사와 학생에게는 모두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일로 다가올 것입니다. 여러 교원단체가 교육과정을 위한 평가가 아니라 평가를 위한 교육과정으로 변질될 우려가 많고 학교 교육 과정의 파행이 예상된다고 말하는 것은 괜한 우려가 아닌 것입니다. 

이렇듯 교육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육부도 교육청도 일제히 치르는 평가를 하지 않고 정책 수립에 필요한 대상 학년과 교과를 최소한으로 선정하여 표집으로만 학업성취도평가를 진행해왔습니다. 학교별 정기고사, 과목별로 실시하는 수행평가도 이미 하고 있는데 도교육청과 교육부까지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게 되면 학생들은 과도한 학습 부담을 지게 됩니다. 학생들은 시험만 보다가 서서히 시들어갑니다. 교사와 학생이 배움의 의미와 지식의 유용성, 다가올 미래사회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는 참된 배움으로 충만한 교실을 꿈꾸는 것이 그렇게 사치스러운 일일까요? 아이도 교육도 결국 믿는 만큼 자랍니다. 도교육청이 주관하고자 하는 학업성취도평가는 이러한 믿음의 정 반대편에 있습니다.

안상태(춘천 금산초 교사, 현 전교조강원지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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