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소설가

현기영 소설가는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신동엽문학상, 만해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은관문화훈장, 제주 4·3평화상, 이육사상 등을 수상했다. (사)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제주 4·3 평화문학상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변방에 우짖는 새》, 산문집 《젊은 대지를 위하여》, 《바다와 술잔》 등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다룬 깊이 있는 작품을 꾸준히 써오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앎과 울림을 전하고 있다. 특히 제주 4·3을 세상에 처음 알린 《순이 삼촌》은 침묵과 권력에 맞선 한국 문학의 위대한 걸작으로 꼽힌다. 김유정 문학촌 개관 20주년 ‘대한민국 문인 아카이브’ 사업으로 전석순 작가(김유정 문학촌 멘토 작가)와 기자는 현기영 소설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기영 소설가

Q.선생님은 어떤 계기로 문학에 매료되었나요?

초등학교 때 어린이 잡지 월간 《새벗》, 《소년세계》 등에 실린 동화나 짧은 글을 읽고 나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초등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글쓰기에 응모해 덜컥 상을 받았어요. 중학 1학년 때는 제주 도내 글쓰기 현상모집에 단편소설을 써서 냈는데 1등을 했어요. 또 대학에서 여는 백일장에도 나가 연거푸 당선됐습니다. 

상을 받는다는 게 격려고 가능성을 인정받는 거잖아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격려해주면 부쩍부쩍 성장하죠. 그때부터 글을 써야겠다 결심했고 자연스레 문학의 길에 들어선 겁니다. 초등학교 때 문학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빠져있습니다. (웃음)

Q. 선생님은 제주도의 유년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4·3의 참혹함 그리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대자연, 이 두 가지가 일생을 거쳐 나의 정신과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1941년에 태어났어요.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총동원령을 내려 강제징용·강제공출로 굉장히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해방을 맞았지만 굶주림은 여전했고 콜레라가 창궐해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설상가상 대흉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서 4·3 사건이 일어나는 거예요. 정말 참혹했습니다.

참 모순된 정치가 미 군정에 의해 벌어졌어요. 해방된 공간에 단일 국가가 들어서야 하는데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이 통일을 반대하며 정당한 요구를 압살하고 3만여 선량한 민간인까지 학살한 게 4·3 사건의 골자예요. 노형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토벌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폐촌이 되었어요. 외가가 많이 희생당했는데, 깊은 우울과 슬픔, 굶주림 속에서 유년을 보냈습니다. 그 혼란에서 나를 안정시킨 거는 ‘용두암’과 ‘용연’ 등 대자연이었어요. 사계절 내내 그 속에서 놀았어요. 제주의 대자연이 나와 친구들을 키웠어요. 

Q. 많은 사랑을 받은 《순이 삼촌》이 나오게 된 계기와 의미가 궁금합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루며 아름다운 문체와 문장으로 독자에게 감동과 위로, 즐거움을 전하는 ‘순수 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4·3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순수 문학을 하기 위해서라도 4·3을 써야 했고, 그게 속죄하는 길이었어요.

4·3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렸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억눌린 채 늘 뒤에서 “누가 죽였고, 누가 죽었다. 저기가 사람들이 학살된 곳이다.” 수군수군 참상을 말했어요. 그래서 1978년, 학살이 일어난 지 30년이 되던 해 《순이 삼촌》을 펴냈습니다.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서는 더는 문학의 길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글을 쓸 때는 4·3 영령들이 꿈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자마자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금서로 지정되어 14년 동안 독자를 만날 수 없었죠.

Q.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무언가요? 

4·3사건이 일어난 지 74년이 됐어요. 하지만 진실의 절반은 여전히 묻혀 있습니다. 그 절반을 밝혀내 4·3 항쟁이 온전히 정당화되는 과제가 남아 있어요. 

해방된 공간에 새로운 인물과 새 일꾼이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일제에 부역한 지도급 인사들, 독립투사를 잡아들이고 고문한 경찰 등이 다시 요직에 앉았어요. 그러니 당시 젊은이들은 “이건 해방이 아니다. 미국이 점령하고 일제가 다시 점령했다. 새로운 독립투쟁을 하자”라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의 분노는 타당하고 정의로운 겁니다. 해방된 나라가 하나가 돼야지 왜 둘로 쪼개냐 이걸 반대한 겁니다. 그걸 주장한다고 죽이고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며 연좌제로 핍박했어요. 그런 역사를 제대로 밝혀야 합니다. 미국에 4·3 학살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어떤 연유인지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하지만 책임이 없는 것처럼 돼 있어요. 광화문에 성조기가 나부낍니다. 뭐가 크게 잘못됐어요. 

Q. 민주화가 이뤄진 후에도 다시 불온서적으로 지정됐을 때 마음이 어떠셨나요?

2008년에 국방부가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군대 내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었습니다. 《순이 삼촌》이야 당시 군사 독재 시절이었지만,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조금씩 나아지고 90년 초에 《순이 삼촌》도 판금해제 되고 90년대에 들어서며 상당히 민주화가 이뤄졌구나, 4·3에 대한 발언을 이제 조금씩 할 수 있게 됐구나 싶었죠. 하지만 여전히 민주화가 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4·3은 군대에 의한 범죄입니다. 군대를 비판했으니 사병들 사기를 떨어뜨릴 염려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식이 잘못됐어요. 군인도 시민의 연장이거든요. 시민은 읽어도 되고 군인은 못 읽게 하는 건 모순이죠.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 삼촌》육필원고

Q. 앞서 언급된 작품 외에 일독을 권하는 작품은 무언가요?

《변방에 우짖는 새》라는 제주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 있어요. 중앙으로부터 소외되고 차별받고 핍박받는 변방의 이야기입니다. ‘변방’이라는 말을 잘 안 쓸 무렵 내가 제일 먼저 쓰지 않았나 싶어요. 변방과 같은 말이 주변부입니다. 중심부 밖의 주변부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하다 ‘변방’이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역사는 변방과 백성의 애환을 잘 기록하지 않아요. 지금도 그래요. 변방과 백성의 삶이 기록될 때는 삶이 피폐해져 민란이 일어날 때 기록됩니다. 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서 지도자적 인물이 목숨을 걸고 나섭니다. 민란을 이끌고 난 다음에 협상을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잘못을 고치겠다고 약속을 받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는 곧 체포당하고 참수당해 죽습니다. 살아남은 백성들은 비로소 약간의 세금이 경감되며 다시 살아갑니다. 그런 이야기가 《변방에 우짖는 새》에 담겨 있어요.

Q. 선생님은 요즘 세상을 어떻게 평하십니까?

모든 게 너무 빨리 변합니다. 인간이 그 변화를 모두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질환이 생기고 왜곡된 인간들이 나타나는 겁니다. 공동체가 무너지는데도 자본주의는 계속 질주하고 있습니다. 기업에 적합한, 로봇처럼 효율적인 인간상을 요구하고 있어요. 여전히 성장을 외치는 걸 보면 대체 더 성장해서 어쩌자는 건지, 이제는 분배와 내실화가 중요한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무한 성장을 거부하며 귀촌하거나 도시에서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지지해요. 문학이 거기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Q. 오랜 세월 글을 써오면서 변하지 않는 원칙은 무언가요?

과거 속에 문학적 보물이 있어요. 해명되지 않은 진실, 버려진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문학의 할 일은 그걸 재발견하여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나는 4·3을 제대로 알린 다음 순수 문학을 하려 했는데 그게 안 되어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됐을지도 몰라요. (웃음) 

물론 4·3 외에 다른 것도 썼지만 ‘4·3 작가’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현재까지 4·3에 골몰해 있습니다. 물론 벗어나려고도 했었죠. 벗어나려고 했었는데 악몽을 꾼 거예요. 보안사에서 당했던 그대로 다시 고문을 가하는데, 그들은 군인이 아니라 4·3 영령들이었습니다. “네가 한 게 뭐가 있다고 4·3에서 벗어나려고 하냐”라며 야단을 치더군요. 그런 꿈을 꿔요. 그러니까 4·3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Q. 《순이 삼촌》이 오페라로 제작됐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오페라 〈순이 삼촌〉은 또 다른 작품이에요. 아주 잘 된 새로운 작품이더라고요. 아주 좋았어요. 소설을 읽는 건 내성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많은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독서가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런데 영화나 오페라, 뮤지컬 같은 장르는 시각적으로 압도적이고 극적이잖아요. 호소력도 크죠. 문학 작품으로만 남을 게 아니라 하나의 도구가 되어서 아직 제주도에만 갇혀 있는 4·3을 전국화하여 진실을 온 국민이 알게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더 많이 변주되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80에 들어선 나이에 글을 쓰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긴 장편을 쓰고 있습니다. 2~3권 분량이 될 텐데 여전히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4·3의 전모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찰까지 담아내려고 합니다.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올해 말까지는 완성하려고 합니다.

정리 박종일 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