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큰롤 50년 역사를 빛낸 50 거목들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70년대 초반 영국음악계에 회오리를 일으킨 글램 록(또는 글리티 록)의 상징적 인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글램은 사운드 측면에서 하드 록이었지만 극적 시각적 무대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는 쇼킹한 이미지의 인물을 가공해 스스로 분함으로써 60년대의 사회성과는 판이한 자극과 과잉을 전달했다. 

그의 접근법은 우주적, 병적, 양성적이었지만 매우 창의적이었다.(실제로 그는 양성애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 창의성이야말로 그가 정열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제1의 동력이 되었고, 201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지속됐다. 나이에 무관하게 항상 음악흐름에 민감한 것도 그의 장점이었으며 록에 관한 한 천재로 받아들여진다. 

1947년 영국 런던 태생. 롤링 스톤스의 히트곡 <Angie>는 80년까지 10년간 살았던 그의 아내 이름이다. 92년 슈퍼모델 이만과 재혼했다. 대표곡은 <Changes>, <Space Oddity>, <Fame> 등.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

비록 대중적 인기로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에게 크게 뒤졌지만 ‘반항 펑크’(Funk)의 진수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두 별개의 대형그룹 팔러먼트 / 펑카델릭(Parliament / Funkadelic)의 설계 및 운영자.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

두 그룹 멤버를 합치면 40명에 달했다. 마지막 박자에 악센트를 둔 차별화된 펑키리듬을 구사했다. 그의 음악은 훗날 90년대 닥터 드레와 아이스 큐브 같은 갱스터 펑크 진영에 역할모델이 됐으며 백인 펑키 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는 그를 프로듀서로 모시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 흑인가수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혁신적인 무대를 꾸며, 한때 금색가발을 써 ‘블론드 흑인’이란 쇼킹한 모습을 선사했고 ‘마더십’이란 비행선을 띄우는 등의 해괴한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머릿속에는 늘 반항적 상상력으로 가득 찼다.

“쓰레기로부터 댄스음악을 구하자!”는 게 목표였고(펑크만이 진정한 댄스음악) 지금 노령의 나이에도 ‘아버지가 싫어하는 모든 음악을 하고자 하는’ 지향을 갖고 있다. 

1940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카나폴리스 태생. <Give Up The Funk>, <One Nation Under Groove>가 대표곡.

DJ 최인(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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