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 조형근 지음 / 창비 펴냄 

나는 86세대의 끝자락, X세대의 첨병쯤에 해당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세대다. 선배들의 집단주의에 순응했고 거대담론엔 경건해 했지만, 자유로운 ‘개인’이고 싶어 한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IMF로 각자도생의 지옥도가 우리사회를 강타하기 전 10년 정도의 기간은 최소한 청년들이 직업걱정, 결혼걱정은 없었던 것 같다. 공장으로 농촌으로 이른바 ‘현장’을 떠돌던 선배들은 대기업으로, 학원가로 진출했고, 결사옹위했던 의장님들은 가슴팍에 금배지를 달았다. 86세대는 기성 체제에 투항하지는 않았지만, 투쟁하지도 않았다. 대신 경쟁을 선택했다. 아이들을 일렬로 줄 세우는 교육에 반대했지만, 내 아이는 ‘진보적인 서울대생’이 되길 원했고, 노동이 있는 삶을 주창했으나 부동산과 주식에 올인했다. 대학 서열화보다는 정확하지 않은 대학 서열에 분노하는, 그토록 조롱해 마지않는 2찍남들의 부모가 바로 우리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익숙한 관성이 아니라 ‘내가 권력일 수 있다’는 불편한 통찰이 아닐까? - [민주주의의 친밀한 적] 161쪽

어렵게 한림대 정규직 교수가 된 지 1년 반 만에 [대학을 떠나며]라는 칼럼을 남긴 채 동네로 돌아간 사회학자 조형근의 이 책은 어느새 기득권이 되어버린 진보 엘리트의 처절한 자기고백이자, 무너진 지식생태계와 대학, 20대 남성의 보수화와 86세대의 책임, 합리적 보수의 출현, 민주주의와 빈곤, 불평등을 아우르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제언으로 가득 찬 책이다. 

‘브리콜뢰르 같은 민중은 구조의 속박 아래 살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에게서 연원하였을 지배의 사실들을 이리저리 모으고 비틀면서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동적인 존재다. 민중은 전위도, 개. 돼지도 아니다. 아니, 그 모두다. 이것저것 모두 모아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는 존재다.’ 

- [민중과 소수자 사이] 257쪽

충격과 슬픔, 애도와 참회, 비난과 처벌, 용서와 맹세 같은 플롯을 가진 ‘애도의 사회화’에 대한 보수 세력의 참담한 대응을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린 기억하고 있다. 아픔을 가진 자들에 대한 절교, 통합을 거부하고 분열과 대립을 천명하는 권력의 말로를 말이다.

‘바이든’으로 들리는 사람이든, ‘날리면’으로 들리는 사람이든! 

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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