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1970년 5월 <사상계>에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이 실렸다. 을사늑약의 5적에 빗대어 당시의 국회의원, 재벌, 장성, 고급공무원, 장차관을 ‘5적’이라 풍자한 것이었다. 6월 1일엔 신민당 기관지였던 <민주전선>에도 <오적>이 실렸다. 

박정희 정부는 <오적>의 유포를 막을 요량으로 <사상계> 시판 중단, <민주전선> 10만부 압수, 김지하 시인과 <사상계> 대표, 편집장, <민주전선>출판국장 등을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하였다. 쿠데타 집권세력의 초조감이었고 독재정권의 발악이었다.

풍자를 견디지 못하는 권력은 이후 어떻게 되었는가.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국민을 끝없는 암흑 속으로 밀어넣었다. 군홧발로 짓밟았다. 시민의 자유는 압살 당했고 독재와 야만의 광기가 군림했다. 아무나 잡혀가고 아무나 죽었다. 

사전적 의미조차 “주로 정치적인 내용을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한 컷짜리 만화”라 적시돼 있는 카툰, 그것도 학생만화공모전에 출품되어 금상을 받은 고교생의 카툰에 “엄중 경고” “과정 살펴 조치” 운운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보자니 기가 막힌다.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지경의 위기를 맞고 있는지 확연하게 느껴진다.

고등학생이, 윤석열이라는 열차의 기관사가 김건희이고 탑승객이 칼 든 검사들이라고 인식한 것에 대한 경각심과 성찰은 고사하고,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통제와 검열의 입마개부터 꺼내 드는 발상은 얼마나 치졸하고 악랄한가. 그런 자들이 우리나라 문화 정책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참담하고 괴기로운가.

정부 곳곳에 “알아서 기고,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하는 간신과 모리배들이 넘쳐나고 있다. 간신들은 아첨하고 경찰과 검찰, 감사원 등 공권력은 아무 때나 아무 데나 칼을 휘두른다. 더 많은 이권을 차지하려는 자들이 보따리를 안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인들 정상적 판단을 할 리 없다. 그러니까 안에서도 밖에서도 끊임없이 망신을 사고 있는 게 아닌가.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조선처럼 꽉막힌 사회에서도 판소리, 마당놀이, 탈춤 등에서 허용되었던 풍자와 해학이 2022년도에 핍박받는 지경이 되었다. 역사를 되돌린 자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되었다. 퇴행과 망상의 악취가 진동한다. 

그러나 보라. 풍자를 견디지 못하는 권력은 결국 내부로부터 무너진다. 스스로 그 권력의 정당성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시민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의지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오적> 필화사건으로부터 9년 후에 박정희 독재정권은 스스로 무너졌다. 역사는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 행여 <윤석열차>에 대한 정부의 미친짓 때문에 위축되거나 슬퍼하고 있을까 싶어 그 고딩에게 한 마디 남긴다. 어이~ 고딩이여! 그대가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일세. ‘멀쩡한’ 어른들이 다 함께 연대해서 싸워줄 테니 쫄지 말고(그럴 리도 없겠지만) 곧장 가시게. 어른들이 못나서 그대들에게 참 별꼴을 다 보여주네. 미안! 시바!


전직 대통령 조사하겠다는 황당 감사원도 모자라서 이제 고딩 만화까지 통제하겠다는 문체부. 이 정도 평이한 풍자마저 허용할 수 없을 만큼 초조하다는 건가. 거기에 무슨 문화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는가. 유신시대 긴급조치 악령의 재현인가. 나라 곳곳에 간신 모리배들이 들끓는다. 진짜 위기다.

류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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