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살아갈수록 돈 많은 사람보다 가족 많은 사람이 부럽고, 가족 많은 사람보다 친구 많은 사람이 부럽다. 나는 강호에서 동서남북 상하좌우를 누비느라 아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생각되지만 친구는 드물다. 천지사방에 술친구만 흔하다.

우리 어머니 생전에 늘 말씀하셨다. 세상에 가장 쓸모 없는 게 술친구데이~ 물론 나도 안다. 술친구는 술 마실 때에만 친구여서 술자리가 파하고 나면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일찍이 술친구를 믿지 않는다. 술친구들은 술자리에서만 믿는다. 

술값 내주고 나서 고마워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 그래서 누군가 대접하려면 술 빼고 그냥 밥만 사야 한다는 사실을 소싯적에 깨달았다. 반주 한두 잔을 넘어서면 대접이 아니라 접대가 되고 관계조차 멜랑꼴리해지기 일쑤다. 그러니까 누군가 대접한답시고 자기 집 아닌 자리에서 술병부터 챙기는 사람들은 다 허당이다. 좋은 소리 못 듣는다.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줄기차게 술을 부르고 술값을 낸다. 가난해서 밥을 굶을 때에도 냈고 강남 대부호를 지나 모르스 부호가 된 지금까지도 낸다. 본능적으로 낸다. 친구도 아닌 술친구들에게 술값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죽도록 외로운 나와 술 마셔준 이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여기까지만 읽으면 섭섭해할 술친구들 많겠다. 그러나 내 친구들은 다 나랑 술 마셔주는 술친구들이다. 술친구 안에 친구가 있고 친구 안에 술친구가 있다. 그러니까 나랑 친하다고 하면서 술 안 마신 사람은 술친구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것이 된다. 나랑 친하면서 술 안 마시는 사람은,

애인이다. 14만 4천 명 애인들 가운데 술 마시는 사람이 드물다. 그거 참 신기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나는 얼마나 교활한 술꾼인가. 내가 취해서 꽐라가 됐을 때 나를 업고 집에 데려다 줄 만한 사람 아니면 애인 안 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보다 술친구가 많고, 술친구보다 애인이 많다. 

김주대 시인은 절대로 이 경지를 못 따라 온다. 애인도 없이 혼자 빌빌 막걸리나 축내는... 아, 아침부터 주대 형 생각하니 눈무리 아플 가린다. 이러니까 내가 낮술을 마시지 않고 어찌 견디겠는가. 내 낮술의 팔할은 다 주대 형 탓이다. 아아, 시바


할아버지는 면장질하면서 적극적으로 친일하고, 아버지는 군부 독재에 충성하고, 본인은 친일청산법에 반대하였다. 조부의 친일 덕분에 3대가 떵떵거리며 호의호식한다. 이래서야 누가 외세에 빌붙지 않겠는가. 뼛속까지 친일파가 지금 국힘당 비대위원장이다.

국힘당 정진석의 저 발언은, “여자의 행실이 불량해서 강간 당한 것이다. 여자가 그렇게 구니까 당해도 마땅하다”는 논리와 똑같다. 강간한 놈은 잘못 없다는 개소리다. 썩은 조정을 거부하고 민주사회를 지향했던 2천만 민중의 열망을 짓밟은 일제의 침략에 대해서 저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자가 국회 부의장 출신 여당 1인자라는 사실, 끔찍하고 망신스럽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자 “부부 싸움 후 권여사가 가출하자 혼자 남아 자살했다”고 주장한 자가 정진석이다. 친일과 패륜의 정점에 선 자가 지금 국힘당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저런 자들이 지금 우리나라 권력과 자본을 대부분 독점하고 있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지금 우리나라가 딱 저런 자들 때문에 망해가고 있다. 아아, 시바!


10월이 왔습니다. 10월이 왔다는 것은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얼마쯤 잊혔던 사랑이 다시 기억되는 순간이 많아진다는 뜻이고, 아무런 상실도 없이 쓸쓸한 저녁을 맞는 날이 많아진다는 뜻이고, 생애의 덧없음과 적막감에 몸서리치는 순간이 많아진다는 뜻이겠지요. 

나는 고요히 저무는 꽃과 나무들, 고요히 먼 길 바라보는 가을새들 쓰다듬으며 또 흐려진 술집 불빛 아래서 엎드리는 날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대의 빈 자리 점점 더 깊어질 것입니다.

노래 그친 가슴에 문득 비라도 내리는 날이 오겠지요. 나는 10월을 처음 지나가는 지붕처럼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비를 다 맞고 싶습니다. 의심 없이 젖어서 내 안의 긴 슬픔과 슬픔과 슬픔과 또 슬픔의 잔뼈들을 다 어루만져주고 싶습니다. 그 슬픔들 안에 그대의 찬 가슴 있거든 기꺼이 따스해지시길요. 거룩해지시길요.

10월이 왔습니다. 안부를 남길 수 있어 기쁩니다. 그대에게도 부디 눈물겹고 기쁘고 슬픈 10월이 당도하길 빕니다. 그 모든 마음들이 생애를 건너가는 찬란한 힘이 되길 빕니다. 나는 여기서 10월을 견디는 별자리처럼 죽는 날까지 한 순간도 죽지 않고 잘 살아남겠습니다. 총총.

류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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