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군의 인생 대미지 보고서 / 강석희 외 / 창비 / 2022

《A군의 인생 대미지 보고서》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쓰인 7편의 이야기를 모은 소설집이다. 단톡방에서 나눈 누군가의 뒷담화가 당사자에게 전해지면서 생기는 갈등(신운선 선, 「스니치」), 영지가 현우의 고백으로 사귀게 되면서 친구들로부터 서서히 고립되어 가는 이야기(강석희, 「사랑하는 영지」), 인기 있는 걸그룹 막내였는데 다른 멤버들 간의 그룹 내 괴롭힘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받은 환호만큼 미움을 받게 된 ‘나’(박서련, 「솔직한 마음」), 단어 하나를 잘못 쓴 ‘죄’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음까지 생각하는 ‘누텔라’(김멜라, 「A군의 인생 대미지 보고서」), 따돌림당하던 준희의 실종으로 드러나는 친구 관계의 민낯(서장원, 「엎드린 사람」),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고립을 택한 ‘기’의 이야기(박영란, 「기의 휘파람」), 사촌이었지만 늘 주목을 받던 연선, 그런 연선을 사랑하고 미워하던 효정의 성장기 (김화진, 「우연한 작별」). 이야기마다 한 줄로 요약되기 어려운 폭력의 상황들이 있고 그에 맞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인물들이 있다. 

이 중에서 「사랑하는 영지」가 특히 인상적이다. 밝고 명랑했던 영지가 남자친구 현우를 사귀면서 ‘말을 할 용기와 미래를 상상할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이 생생하다. 현우가 먼저 영지를 좋아했다. 중3 겨울 학교 축제 때 진행자였던 현우는 ‘이어폰 줄 빨리 풀기 대회’에 출전한 영지가 우승하게 도와준다. 고등학생이 되어 둘은 같은 반이 되었는데 현우가 영지의 생일을 제일 먼저 축하해 주면서 영지는 현우의 존재를 알게 된다. 현우는 도서실 구석 서가로 영지를 불러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사귀자고 한다. 

이후 현우는 영지와 함께 등교하기 위해 매일 버스 정류장 세 개를 거슬러 올라오고, 영지는 현우와 사귀면서 ‘온몸에서 탄산이 터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두 달쯤 지나 갈등이 시작되는데 영지는 모든 것은 관계를 단단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영지는 곧 갈등 뒤에 남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우는 영지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했고, 둘 사이의 오해가 충분히 풀리기도 전에 그 일을 친구들에게 말해 버렸다. 영지는 현우의 기분을 살피게 되고 먼저 사과하는 일이 잦아졌다. 현우는 영지가 수업 활동으로 다른 남학생과 얘기하는 것도 추궁했다. 영지는 현우에게 헤어지자고 했는데 현우가 밤늦게 찾아와 잘못했다고, 좋아해서 그랬다고 무릎까지 꿇고 사과하는 바람에 헤어지지 못했다. 영지는 현우의 눈빛에서 ‘공포와 소유욕’을 느낀다. 

현우는 좋아한다는 이유로 영지의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한다. 영지는 현우와의 관계가 주는 압박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주변 사람들은 영지와 현우의 갈등을 연인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한다. 그 속에서 영지의 감정은 억압되고 영지는 고립된다. 드러나지 않는 현우의 폭력에 의한 영지의 고통은 투정으로 오인된다. 영지는 일주일간 학교에 못 갈 정도로 앓는다. 그동안 영지와 현우 사이의 이야기가, 없었던 일까지 더해 수치스러운 내용으로 아이들 입에 오르내렸다. 영지는 ‘온몸의 실핏줄이 다 터지는 기분’으로 쓰러진다. 

다시 깨어난 영지가 사서 선생님께 ‘나쁜 건 그 새끼니까요’라고 마무리되는 이메일을 보낼 때 나는 안도했다. 영지가 말을 잃은 후 점심시간마다 도서실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자기 얘기를 할 사람을 만난 것이 기뻤다. 또 영지가 자기 목소리를 다시 찾고 자기 고통의 원인을 바로 파악한 것에 박수를 쳤다. 나의 말로 나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고 느꼈다면 그런 나의 느낌을 존중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힘으로 나는 나의 삶을 꾸려갈 수 있다. 내가 틀렸다고 하는 목소리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김순남 (봄내중학교 교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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