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섬 중도’ & ‘Awake 흐르는 강’

춘천의 가을이 예술로 물들고 있다. 

어디 가을뿐인가 봄부터 시작, 일 년 내내 도시에 예술과 문화 이벤트가 넘친다. 그 가운데 바깥에서 춘천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이벤트는 무얼까? 여전히 많은 이들은 막국수·닭갈비 축제를 떠올릴 것이다. 또 마임·연극·인형극 등 춘천이 내세우는 축제를 꼽는 이도 있을 것이고 커피도시 페스타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벤트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이 춘천에서 떠올리고 춘천에 대해 기대하는 건 호수와 섬, 산 등 아름다운 자연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문화·예술 이벤트들이 호수와 섬과 어우러질 수 없을까? 자연이라는 장소성이 강조되며 문화도시 춘천을 자연의 씨줄과 예술의 날줄로 엮어갈 수 없을까? 라고 말이다. 많은 문화·예술 이벤트들이 펼쳐지지만 비슷한 모양새다. 꼭 춘천에 와야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적지 않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라고 하니 누군가를 질책하려는 건 아니다. 

축제의 주인공은 섬과 숲, ‘예술섬 중도’에선 익숙한 피아노 연주도 새롭게 들린다.

방법이 없는 걸까? 다른 곳에는 없는 춘천만의 장소성이 더해지면 어떨까? 춘천의 모든 문화·예술 이벤트가 춘천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관광객을 유치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시민에게 새로운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10월의 마지막 주말, 춘천 곳곳에선 역시나 크고 작은 문화·예술 이벤트들이 열렸다. 그중 두 가지 이벤트가 춘천만이 가진 장소성이 더해지며 자연의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는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했다. 바로, ‘예술섬 중도’와 ‘Awake 흐르는 강 River Music Concert’이다.

섬과 호수가 주인공… ‘예술섬 중도’ & ‘Awake 흐르는 강’

‘예술섬 중도’는 지난달 28~30일에 말 많고 탈 많은 레고랜드 옆, 생태계가 건강하게 보존된 하중도 생태공원에서 열렸다. 강원도와 춘천시가 7억 원을 들여 산책로·수변 데크·자전거도로·화장실·벤치·각종 안내판을 정비해 지난 2020년에 개장한 곳이다. 공원이긴 하지만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져서 춘천역에서는 도보로 약 4km 가까이 걸어야 한다. 공원까지의 진입도로는 폭이 좁아 도로변에 차를 세우기도 어렵고 녹지지역이기에 주차장이나 편의시설이 확충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꽤 많은 시민이 이곳을 알고 있지만, 정작 가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조건 때문에 생태계가 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1년에 단 3일 이곳에서 ‘예술섬 중도’가 열린다. 올해로 3번째, 축제는 해마다 자연과 예술을 씨줄·날줄로 엮으며 춘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예술향유 기회를 제공한다. 2020년의 주제는 ‘치유의 숲’, 2021년에는 ‘다시, 숲’, 올해는 ‘고요의 숲’을 주제로 삼았다. 하나 같이 섬과 숲이라는 장소성이 주는 치유·안식·생태 가치 등을 전면에 내세운다. 

올해의 주제공연은 〈순수의 숲〉이었다. 카누에 몸을 싣고 아름다운 가을 호수를 지나 섬에 도착한 시민들은 ‘숲의 소녀’를 따라 하중도의 숲길을 거닐었다. 피아노·발레·플라멩코·한국무용·현대무용·부토(아방가르드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숲이 우리 곁에 있음을 알려줬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 말이다. 이외에도 낭독공연·요가·명상·춤 놀이·숲 도서관·춘천의 새 사진 전시회·라이브페인팅·숲 플레잉(소풍·에코엔티어링 등)·제로웨이스트 마켓 등이 3일간 펼쳐졌다. 축제의 주인공은 섬과 숲이다. 이 때문에 축제 기간에 만난 퍼포먼스와 프로그램들이 도시에서 펼쳐지는 여느 축제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지난달 30일 노을이 지는 상중도 배터(근화동 19-2)에서 열린 ‘Awake 흐르는 강 River Music Concert’(이하 Awake 흐르는 강)도 같은 의미로 반갑다.

‘Awake 흐르는 강’이 호수 자원을 활용한 공연 콘텐츠로서 지속되길 바란다.

문화도시 사업의 현장에서 자주 들어온 말은, 춘천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호수 자원을 활용한 공연 콘텐츠가 없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었다. ‘Awake 흐르는 강’은 바로 그 아쉬움에 답하며, 호수와 노을을 배경으로, 제 기능을 잃은 상중도 배터에 작은 바지선을 띄워 펼쳐진 클래식 공연이었다.

공연은 전날 벌어진 이태원 참사로 인해 당초 예정됐던 프로그램을 수정하여 추모 형태로 진행됐다. 백형민 무용가는 이태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진혼무를, 에스윗 색소폰 콰르텟은 〈G선상의 아리아〉,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바이올리니스트 우예주와  첼리스트 마이클 니콜라스·피아니스트 조준영은 크라이슬러가 편곡한 〈아! 목동아(Londonderry Air)〉와 멘델스존의 피아노 3중주 2번 2악장을, 이지화 트럼페티스트는 에롤 가너의 〈Misty〉와 니니로소의 〈밤하늘의 트럼펫〉을 들려줬다. 추모의 마음을 담은 클래식 선율로 인해 눈 앞에 펼쳐진 생생한 자연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불편하고 밍밍한 이벤트… 오히려 그게 장점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려면 지역의 고유자원과 지역 특성이 잘 결합한 콘텐츠가 있을 때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제약과 한계마저 개성으로 승화되면 그것이야말로 중앙과 차별화된 로컬 콘텐츠가 아닐까? 

‘예술섬 중도’는 불편한 축제이다. 자전거 또는 축제 기간 운영되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차를 가지고 가더라도 생태공원 한쪽에 마련된 작은 주차장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갈아타거나 걸어야 한다. 또 밍밍한 축제이다. 보통의 축제가 지향하는 다이내믹함과 소비를 기대하고 갔다가는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그저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눈 앞에 펼쳐지는 예술에 잠시 눈과 귀를 열면 그만이다. 지쳐서 돌아올 이유가 하나 없다. 숲길을 걷다가 발견한 쓰레기 하나 주워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말이 나온 김에 내년에는 ‘멍때리기 대회’나 ‘쓰레기 주워오기 미션’을 추가하는 게 어떨까? 

시범사업으로 처음 열린 ‘Awake 흐르는 강’도 마찬가지다. 바지선 위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둔치에 마련된 임시 객석은 불편했고 편의시설도 부족했다. 공유수면관리법상 의암호에 바지선 하나 놓기도 쉽지 않은 현실적 제약도 크다. 이번에도 기존의 허가받은 바지선을 끌고 와서 공연을 펼쳤다. 하지만 춘천의 아름다운 가을 호수와 노을이라는 무대가 있는 데 더한 무대가 필요할까? 불편한 객석이 대수인가? 

‘예술섬 중도’가 앞으로도 계속 불편하고 밍밍한 축제로 남길 바란다. 또 ‘Awake 흐르는 강’이 이런저런 제약으로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특별한 장소에서 예술이 주는 고양감을 얻는 대신 기꺼이 자연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불편하고 밍밍한 이벤트로 지속되길 바란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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