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폭설 / 류근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할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제 친구, 동네 고딩이 자라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23세 강남 토박이에요. 공군 의장대 출신입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마음입니다. 천천히 읽어주세요. 우리 청년들… 참 고맙습니다. 

군대에서 시신을 운구한 기억이 있습니다. 비상 탈출을 하면 전투기가 민가에 충돌할 것을 우려해 조종간을 놓지 못하고 인근 야산에 추락시켜 의롭게 순직한 대위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수많은 언론과 고위 공무원들이 운집했습니다.

새벽 네시에 수원으로 출발해 영안실에서 시신을 받고 경례를 한 후, 10비행단에 도착해 운구차에서 그 분의 관을 옮겨받아 장례식장 안으로 모시는 임무였습니다.

장례식은 체육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관을 들고 커다란 문 앞에 섰습니다. 문이 열리자 넓은 체육관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중 가장 크게 절규하시던 여성분이 계셨습니다. 고인의 어머니셨습니다. 그 비명 소리가 생생합니다.

제가 그 순간 느낀 것은 순수한 공포였습니다. 슬픔도, 안타까움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생각이 나서 두려웠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적나라한 절규를 처음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무례할까 조심스럽지만 사람이 내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슬픔과 다른 종류의 무언가였습니다.

그것을 표현할 만한 단어를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자식을 잃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변에 자식을 잃은 자도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우리 중 정말이지 대다수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식의 죽음에 슬퍼하는 부모의 마음에 경중은 없습니다. 돌아가신 대위님은 훈장을 받고 소령이 되셨습니다. 어머니의 절규는 그럼에도 처절했습니다.

맞습니다. 감성으로 정치하면 안되지요.

비극이 정쟁에 이용돼서도 안되고, 추모나 애도를 강요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우리는 인간이 결코 잃어서는 안될 것을 포기해선 안됩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사망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동안 우리는 절대 이것을 포기해선 안됩니다.

그것을 표현할 단어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무겁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분노를 거두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말을 조심해서 해주세요.

단언컨대,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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