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만들어 낸 극단적 폐해는 전체주의 국가
선진국은 ‘고독’을 예방하는 다양한 서비스 제공

널리 알려진 것처럼 2018년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이 임명됐다. 당시 영국 인구 6천600만 명 중 900만 명 이상이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근거가 됐다. 이후 정부 부처 9곳이 협력하여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2천만 파운드의 재정도 마련했다. 

도대체 외로움이 무엇인데 정부가 나섰을까? 영어권에서 ‘lonely’(외로운)라는 말은 셰익스피어가 비극 《코리올레이너스》에서 처음 썼고 《햄릿》에서는 ‘loneliness’(고독·외로움)라는 단어를 처음 썼다. 당시 ‘외롭다’라는 말은 그저 이웃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 정도로 사용됐다. 이후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외로움’은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악마조차 위태롭다고 느끼게 만드는 감정으로 묘사됐다. 산업 발전과 도시가 늘면서 외로움은 ‘다른 이들과 가까이할 수 없는 감정이자 심리 상태’라는 의미를 얻게 됐다. 

현대인의 고립을 다룬 연극 〈마주보는 집〉(신영은 작·정은경 연출) 중 한 장면
 

외로움으로 인한 극단적 결과 중 하나가 고독사이다. 가족·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다. 즉 사람들로부터 절대적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질병과 생활고에 내몰린 채 맞는 외로운 죽음이다. 외로움은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다. 자아를 상실하고 타자를 잃고 나아가 세계를 동시에 상실한다. 외로운 군중이 만들어 낸 극단적 폐해는 전체주의 국가의 등장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히틀러의 출연을 그렇게 설명했다. 영국이 외로움 부를 신설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고립과 단절을 막기 위한 노력은 세계 공통의 이슈다. 일본은 고독사를 막기 위해 1990년대부터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시·정·촌(市·町·村)을 중심으로 주민 안전망을 구축해 주민들이 수시로 혼자 사는 가구를 방문해 안부를 묻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주민뿐 아니라 복지공무원, 우유·신문 배달 업체, 가스검침원 등이 함께 고위험 가구를 살피며 고독사 예방에 나섰다. 미국은 협동조합 형태의 NORC 프로그램(Naturally Occurring Retirement Community·자연발생적 은퇴 공동체)을 26개 주에서 활용하고 있다.

호주는 웹사이트에 등록된 시민들이 독거 노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연결하는 ‘독거노인 입양’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덴마크는 ‘코하우징’ 같은 주거공동체에서 주방·식당·세탁실 등 공간을 함께 쓰며 이웃과 교류하며 고립·단절을 줄이는 데 힘쓰고 있다.

 

고독사 사망자 50~60대 남성 압도적

자살로 인한 고독사 20대 56.6%, 30대 40.2%

20대 자살시도자는 6천395명

그동안 외로움을 낭만적으로 인식해온 한국에서는 이제야 정부 차원의 고독사 실태조사가 처음 진행됐다. 《춘천사람들》 351호에서 보도했듯이,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의 주요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50~60대 남성의 고독사 위험이 가장 두드러진다. 지난해 고독사 사망자 3천378명 중 50~60대 남성이 1천760명으로 전체의 52.1%를 차지했다. 이 중 50대가 900명(26.6%), 60대가 860명(25.5%)이다. 이는 같은 연령대 여성 고독사 사망자 수와 비교하면 각각 10배, 7.5배가량 많은 숫자다. 고독사로 사망한 50대 여성은 91명, 60대 여성은 114명이다.

전체 남성 고독사 사망자 2천817명 중 50~6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62.5%였다. 40대에서도 436명이나 나왔고 이어 70대(314명), 80대 이상(135명), 30대(120명), 20대(37명), 10대(1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연령대와 관계없이 남성이 고독사에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남성 사망자(2천817명)가 여성 사망자(529명)보다 5.3배나 많고 최근 5년간 증가율도 남성(10.0%)이 여성(5.6%)에 비해 높다. 왜일까? 이는 사회적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큰 한국의 남성들이 중장년기에 들어 실직이나 이혼 등을 계기로 가족이나 동료와의 연대가 줄어들고 건강관리와 가사에도 익숙하지 못해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20~30대의 경우 전체 고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3~8.4%로 50~60대보다 낮지만, 극단적 선택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청년 고독사는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경우가 많아서 자살로 인한 고독사가 20대 56.6%, 30대 40.2%로서 전체 연령대 극단적 선택 비중 17.4%보다 월등하게 높다. 특히 보건복지부의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현황(응급의료기관 66개소 기준)에 따르면 20대 자살시도자는 6천395명(남성 1천788명·여성 4천607명), 다음으로 30대가 3천324명(남성 1천140명·여성 2천184명)에 달한다. 그 이유로 취업 등 경쟁 사회의 제일선에 내몰린 상황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1인 가구 증가는 소득분배와 빈곤 수준에 악영향

주거·일자리 정책과 더불어 ‘고독’을 예방해야

2018년 4월 한국리서치가 국민 1천 명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처음 ‘외로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인식보고서》를 펴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7%가 ‘거의 항상 외롭다’라고 답했으며, 19%는 ‘자주 외롭다’라고 답하여 26%에 이르는 응답자들이 외로움을 상시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라는 응답은 23%였다. 같은 조사에서 외로움 체감도는 20대가 40%, 30대가 29%로 청년세대에서 높게 나타났다. 혼인 상태 및 가족 수에 따른 외로움 체감도에서는 1인 가구에서 46%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가구 소득별 외로움 체감도는 200만 원 미만에서 39% 가장 높게 나왔다.

통계청의 ‘2022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3.4%인 716만 6천 가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인 가구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세대는 20대(19.8%)~30대(17.1%)가 36.9%이고 50대(15.4%)~60대(16.4%)가 31.8%를 차지했다. 

문제는 외로운 1인 가구의 증가는 사회의 소득분배와 빈곤 수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1인 가구의 특성분석과 경제적 영향’(2020년)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저학력·미취업·월세 등의 거주형태에서 높게 나타나고 특히 1인 가구가 10% 상승하면 지니계수(빈부격차와 계층 간 소득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는 약 0.006(1.7%) 상승하고, 빈곤지수(최소한의 소득수준 이하로 사는 국민의 비율)는 약 0.007(3.6%)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되어, 1인 가구의 증가는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빈곤율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춘천의 1인 가구 수는(2022년 9월 말 기준) 전체 13만2천818가구 중 5만4천602가구(41%)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중 40~64세 1인 가구가 2만 531가구(38%)로 가장 많고, 39세 이하가 1만8천491가구(34%), 65세 이상이 1만 5천 397가구(28%) 순이다. 

결국, 여러 통계와 조사를 빌리지 않아도, 혼자이고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일수록 고립과 단절감을 크게 느끼고, 그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거정책과 일자리 정책이 절실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또 1인 가구 중심의 정책뿐만 아니라 1인 가구를 다인 가구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을 함께 추진해 가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의 복지 정책적 뒷받침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 고독사는 단순히 생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그 수를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고독사’ 이전 1인 가구의 고립과 ‘고독’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선진국 해외 사례처럼 ‘고독’을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로 나아가야 한다.

춘천도 정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춘천시는 보건복지부 ‘고독사 예방 및 관리 시범사업’ 지자체로 선정 2022년 8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1억 9천 500만 원을 투입해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나서고 있다. 65세 이상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AI 케어콜’, ‘우리마을 이웃돌봄’, ‘심리상담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AI 케어콜’은 독거노인 200명에게 매주 월요일 15시 주 1회 AI 자동전화로 안부를 확인하고 이상징후 발생 시 현장대응을 한다. ‘우리 마을 이웃돌봄’은 독거노인 120명에게 주 1회 이상 이웃 돌보미를 연계하여 이웃 간 돌봄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한다. ‘심리상담 지원’은 독거노인 40명에게 전문가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또 춘천시 출연기관 (재)춘천지혜의 숲은 시니어상담센터에서 신중년 및 노령층에게 인생 7대 영역(일·사회공헌·재무·사회적 관계·가족·여가·건강)에 걸쳐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및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웰다잉전문가를 양성하고 사회공헌 동아리 ‘춘지타’(춘천지혜의숲 타임뱅크)활동과 연계하여 고독사 예방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또 상담센터내 동년배 상담가 14명이 상담을 진행하며, 특히 50~60대 연령층과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집중적으로 살필 계획이다. 노인 일자리로 마을돌봄사업단(효자2동·후평3동)을 시범 운영하여 마을 내 상담·운동·동행·말벗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고독사를 예방할 예정이다. 

하지만 청년정책은 일자리에 치중되어 있다. 시는 지난해 국비 등 사업비 102억 원을 투입해 일자리·교육·생활안정·참여와 권리 등 4개 분야에 39개 사업 △부업 대학생 운영·관리 △청년 지원사업 △춘천시 지역특화 청년일자리 △청년예술인 공연예술 창작교류사업 △청년농업인 경쟁력 제고 △지역선도대학 육성 △청년내일저축계좌 지원 등을 추진했다. 중간지원조직 춘천시청년청에서는 청년정책 발굴과 더불어 ‘청춘상담소’ 등을 통해 지역 청년의 다양한 고민을 청취해왔다. 하지만 최근 시의회는 2023년 청년청 운영비를 전액 삭감했다.

 

복지정책만으로는 한계

한국사회 만연한 능력주의 자기책임의 윤리에서 벗어나야

춘천시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지자체가 비슷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채 오히려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정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체부가 발표한 ‘2022년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노력에 따른 소득의 격차를 인정해야 한다’, ‘생계 복지는 당사자 책임이다’, ‘경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라는 의견을 우세하게 드러냈다. 특히 ‘당사자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복지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인식이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고립과 단절을 공론화하고, 사회 전반에 깔린 인식과 가치의 전환이 동반되어야 한다.  

최근 춘천에서는 중간지원조직을 중심으로 그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춘천문화재단이 지난해 27일 ‘봄내극장’에서 진행한 제42차 지역과 문화포럼은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문화와 예술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럼은 연극 〈마주 보는 집〉(신영은 작·정은경 연출) 공연과 강연·토크쇼로 진행됐다.

연극은 두 청년을 통해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상처받은 남자는 세상이 두려워 4년 넘게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여자는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며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살아간다. 이들은 가정과 친구들, 사회에서 패배자·낙오자 취급을 받는다. 어느 날 남자는 여자의 집에서 들려온 풍경소리에 이끌려 여자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작고 사소한 시선과 마음은 서로를 향한 작은 응원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이어진 강연과 대화에서 참석자들은 고립과 단절의 해법으로 국가의 정책적 역할과 더불어 소통·공감·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김만권 교수(정치철학·경희대)는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인 대다수가 성공에 대한 자기 책임의 윤리가 강하며 각자도생의 능력주의가 가장 공정한 분배 수단이라 믿는다. 하지만 양극화된 분배와 불평등 사회가 심화되며 사회 구성원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빈곤한 사람들은 자기혐오에 빠지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감정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청년의 높은 자살 시도율이 그렇다.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적 역할을 촉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와 자기 책임, 노동윤리라는 수렁에서 벗어나야 한다. 타자를 환영하고, 경청을 통해 치유하는 공동체와 사회로 나가야 한다”라고 역설하며 가치의 전환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춘천의 문화도시 조성사업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그러한 가치 전환의 확산에 일조할 것을 주문했다. 

춘천사회혁신센터도 고립 상황 혹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사후적 지원보다 사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춘천시고립동’이라는 프로젝트를 지난해 9~12월에 진행했다. 고립의 경험을 안전하게 나누는 공간 ‘춘천시 고립동’을 조성, 고립 경험인 당사자와 이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시민이 경계 없이 모여, 자기 긍정과 환대의 감각을 익혔다. 이를 통해 지역 내 고립에 대한 인식을 촉진했다.

참가자 엘피(닉네임)는 “고립은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이 단절되어 심연으로 말려 들어가는 상태이다. 전에는 나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고립 상황을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다. 이제 함께할 사람을 찾고자 한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에서 잘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매주 만나서 잘살고 있음을 서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시민이 고립과 단절의 시대를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적 대응을 촉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되, 소통과 연대를 통해 ‘내 탓이 아니다’라는 인식의 전환과 인사를 건네고 경청하는 삶의 태도전환, 두 가지 방향이 결합되어야 한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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